건강한생활

원만한 비위를 가진 사람이 조루가 적은 이유

입력 : 2008.04.21 11:41

수정 : 2008.07.22 10:16

토(土) 에너지는 우리 몸에서 비(脾), 위장(胃臟)에 배속된다. 일반적 개념은 중재·포용·변화·중심 등의 뜻이 있다. 색깔은 황색이고, 방위는 중앙이다. 위장도 우리 장부에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중심이라는 개념이 좀 어려울 수도 있다. 이게 지축(地軸)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지구는 23.5도 기울어져서 돌고 있다. 꼬챙이가 꽂아져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꽂아져 있는 것처럼 돌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이 중심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몸의 중심의 역할을 하는 것을 중앙 토(中央 土)라고 표현하고 비, 위장이 그 중심의 역할을 한다고 보는데, 신기한 것은 이 위장도 지축의 중심처럼 23.5도 정도 기울어진 모습이라는 것이다. 인체가 소우주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은가?


병이 하나 생기면 영향이 상생상극으로 미쳐서 다른 장부까지 다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가장 근원의 문제를 일으킨 장부를 찾아 그것을 중점적으로 치료하지만, 여러 장부의 상태가 극도로 안 좋을 때엔 제일 먼저 위장을 다스리는 것을 먼저 한다. 먹지 못 하면 그 약이 영향을 미쳐서 간으로 갈지 폐로 갈지 콩팥으로 갈지 일단 갈 수가 없으니까 그렇다. 그래서 비, 위장을 후천(後天)의 근본이라 한다. 수(水) 에너지는 선천(先天)의 근본이어서 부모로부터 원기로서 태어날 때 받고 나는 것이고, 토(土) 에너지는 후천적으로 잘 섭생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위장은 하는 일도 뭔가 들어오면 떡이 들어왔든지 고기가 들어왔든지 다 포용해서 죽처럼 변화시켜 필요한 곳에 보내 주는 중개소 역할 같은 걸 한다.
감정 중에서는 생각하는 기운에 해당한다. 그래서 위장이 약한 사람의 특징이 우리가 보기에는 쓸데없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한다. 밤새 생각으로 탑을 쌓고, 집을 짓는데, 집을 막 5층을 지었다가 3층을 지었다가 무너뜨렸다가 다시 지었다가 페인트칠을 했다가 밤새 계속 가만히 앉아서 그러고 있는 것이다.


자기도 그게 괴롭고, 좀 단순해지고 생각을 비우고 싶은데 위장이 약하면 그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고 보면 자기 생각에 답답한 면이 보이더라도 너무 다그쳐서 뭐라고 그러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현명하다. 자기도 안 그러고 싶지만 그렇게 되는 그 심정도 좀 헤아려 주어야 한다.


비위가 기육(肌肉) 즉 살과 관련이 있어서, 살찌고 싶어서 너무 고민인 사람, 살 빼고 싶어서 너무 고민인 사람 모두 비위 토(土) 기운의 부조화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저사람 비위가 참 좋다하면 음식에 대한 비위도 그렇고 교우관계에 대한 비위도 좋다는 것을 뜻한다. 비, 위장이 약하면 자기 의향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들을 때 금방 피곤해져서 견디기 힘들어 인간관계가 좁고 까다로울 수 있다.


반면 비위가 좋은 사람의 경우는 이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면 “어! 그래그래 네 말이 맞다.” 하다가, 다른 사람이 정 반대의견을 말하는데도 “어! 네 말도 맞네! 정말” 하는 식이 많다.


그래서, “자식! 이래도 응, 저래도 응, 뭐야?” 해서 답답해하는 사람도 생긴다. 토(土) 기운이 왕성한 사람은 좋게 보면 포용력이 있어 보이고, 나쁘게 말하면 줏대가 없어 보인다. 느끼해 보이기도 하고…….


잠깐, 여기서 이런 얘기를 해보자. 그 사람의 에너지는 똑같은데 어떤 사람은 그를 포용력 있게 보고, 어떤 사람은 그를 느끼하다고 보는 걸까?


그 사람의 에너지에는 평가가 필요 없는 것이다. 그냥 그러할 따름이다. 그 사람을 느끼하게 보는 것과 포용력 있게 보는 것은 보는 사람들의 에너지 구조 때문이다. 상대가 문제가 아니라, 다 내 에너지 때문인 것이다.


그 사람이 느끼하게 보이느냐, 포용력 있게 보이느냐는 내 에너지 때문이라는 게 무슨 소리냐. 오행의 다섯 가지 기운이 내 안에서 다 조화를 이루는데 있어, 상대의 토(土) 기운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내 몸속에서 조화를 이루는데 도움이 될 때, 준 것 없이도 그 사람이 포용력 있어 보이고 좋아 보인다.


하지만, 토(土)기운이 나한테 조화를 이루는데 부담이면, 이 사람이 느끼하고 줏대 없어 보이고 그런 것이다.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 싫다는 어떤 평가의 마음이 느껴지면 꼭 그렇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저 사람에게 많은 기운이 내가 필요 없을 따름이고 그 에너지가 나한테 부담인 것 같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내 에너지를 보내기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오행(五行) 공부는 소인을 면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고 했다. 유학에서는 인간을 소인과 군자로 나눴는데, 소인은 항상 모든 일을 남의 탓이라고 하고, 군자는 항상 내 탓이라고 한다고 했다.


군자가 분명히 남 때문에 일을 망쳤다고 원망하고 증오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 탓이라고 말한다면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것이다. 그러나 군자는 이 원리를 밝게 알기 때문에 명명백백한 사실로서 그렇게 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동양의 학문들을 배우면서 인간패턴이 다양한 걸 알게 되어 너무 많이 행복해졌다. 머릿속으로만 “이게 좋은 사람의 태도다. 그러니 이렇게 너그럽게 행동해야지.” 하면 이것은 꼭 마음에 앙금이 남는다. 이게 너무 명확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서 사람을 이해하게 되면,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 만큼 행복해지는 것 같다.


우리가 인간관계를 안하고 살수는 없으니까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이해의 흐름이 잘 흘러간다면 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이런 것들을 이제 우리가 생활의 필수적 지혜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재미있는 일화 하나 들어보자.
옛날에 중국에는 황제가 있고 각국에 왕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왕이 난치병에 걸려서 별의별 치료방법을 다 써 봐도 효험이 없었다. 그 때 문지(文摯)라고 하는 명의가 제자 하나를 데리고 전국을 돌다가 소문을 듣고 거기를 가게 되었다.


신하들이 “당신이 황제의 병을 고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 명의가 딱 쳐다보고는 곧 이 왕의 병을 알았는데, 의외로 대답이 황당했다. 왕이 굉장히 화낼 만한 말을 해 버린 것이다.


이에 왕이 화를 버럭 내며 “네 이놈!” 했다. 그런데 이 명의는 또 한번 왕을 화나게 하는 말을 했다. 대노한 왕은 이 명의와 제자를 곤장을 쳐서 내쫓으라 명령하기에 이르렀다.


제자가 매 맞고 쫓겨 나오면서 “스승님, 우리 죽을 뻔 했어요, 왜 그러셨어요?” 하니까, “이제 그 왕은 병이 거의 반 이상 나았다”고 대답을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첫째, 예전의 명의는 보기만 하면 안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고, 음양오행의 원리를 깊이 알면, 생긴 모양과 목소리 같은 걸 통해 음양오행의 과부족(過不足)을 알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보기만 하고도 명의가 그 왕의 병을 안 것이다. 목소리에도 음양오행이 있으니까 그 또한 진단 포인트가 됐으리라.


둘째, 이 왕이 어떤 사람이었냐면, 생각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왕도 여러 스타일이 있는데, 전제적(專制的) 군주형으로 “잔소리 말고 내 말대로 이렇게 해!” 하고 말 안 들으면 뭐 그냥 죽이고, 이런 사람이 있는 반면, “전하! 이래야 되옵니다. 꼭 빨리 조치해 주십시오.” “전하! 그건 아니 되옵니다 이렇게 해야 되옵니다.” 하며 신하들이 의견을 달리하면 어떻게 중재해야 되나 고민하는 스타일도 있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생각이 많으면 기가 막힌다고 나와 있는데, 그래서 기가 막혀서 딱 풀리지 않은 것이 중요한 병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신적인 요소가 치료가 안 되니까 치료가 잘 안 된 것이었다.


이럴 때는 상생의 개념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상극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더 효율적이다. 그래서 목극토(木剋土)한 것이다. 목(木) 에너지로 맘껏 화를 내어서, 생각으로 맺혔던 답답한 토(土) 에너지를 풀어 준 것이다. 마치 흙으로만 뭉쳐 있어 답답한 땅에 나무가 뿌리를 내려 흙의 소통을 도와주는 형상이다. 이를 목극토(木剋土)라 한다.


임금이 워낙 우유부단하고 생각이 많고 이 사람 저 사람 얘기에 마음이 약해져 스스로 기를 맺히게 하고, 평소 맘껏 화도 못 낸 스타일이었으리라. “화를 내는 것은 만백성의 어버이이신 왕이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말이 왕의 가슴을 무겁게 했을 것이다. 신하들은 또 이 마음 약한 왕이 화내기 어렵도록 기술적으로 말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명의가 왕으로 하여금 화를 맘껏 낼 수 있는 좋은 명분을 준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 명의는 자기의 목숨을 걸고 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왕은 치료가 되지 않으니까. 물론 왕의 착하고 유(柔)한 마음도 알았으니까 죽이기까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렇게 목극토(木剋土)의 원리로 정신적으로 치료했던 일화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때론 높은 산에 올라가 화를 내듯 소리도 지르고 하면서 치료효과를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맘껏 웃거나 울고, 실컷 화를 내 풀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황토방과 황토내의, 황토침대 등이 인기가 있다. 황토란 모든 것을 중재하고 변화시키며 부드럽게 완화하는 작용도 있다. 중금속이나 환경오염에 많이 노출된 현대인들이 황토방에 가서 황토의 변화 중재 해독 작용으로 효과를 보는 것이다. 오상(五常)정신 중에선 신(信)에 해당한다.


토(土) 에너지는 계절로 보면, 환절기와 장마철에 해당한다. 어떤 변화를 포용해서 중재하는 모습이 환절기다. 환절기 중에서도 가장 큰 환절기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것이다. 봄에서 여름으로의 변화는 따뜻한 곳에서 뜨거운 곳으로 가므로 큰 변화는 아니지만, 여름의 뜨거움에서 가을의 서늘함으로 바뀌는 것은 큰 변화이다. 열기를 식혀 큰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 장마철에 그렇게 많은 비가 내리는 것이고, 그 열기를 굴복시키는 3번의 고비가 삼복(三伏)인 것이다. 엎드릴 복 자를 써서 굴복시킨다는 뜻으로 쓴 것이다. 또 겨울의 차가움에서 봄의 따뜻함으로 넘어가는 변화도 큰 변화이기 때문에 꽃샘추위 등으로 완연한 봄을 느끼기까지 고비들을 겪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어떤 변화의 완충지역(buffer zone)이 토(土) 에너지의 특징이니, 성 에너지의 운용에 있어서도 성 행위의 유지력과 관계가 깊다. 토(土)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은 황토내의를 입거나, 침실을 꾸밀 때 노란색 톤이 성 유지력에 도움이 되어 더 오랫동안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 미트라 한의원
http://www.mitr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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