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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억 보증 빚, 개인파산 딛고 억대 연봉자 된 재무상담사 김의수의 조언

입력 : 2009.03.16 09:00

수정 : 2009.03.16 09:00

우리는 돈이 얼마나 있어야 행복할까? 한때 유행했던 ‘10억 모으기’ 바람은 수그러들었지만 여전히 서점에 가보면 적은 돈으로 몇 배에서 수십 배, 수백 배의 수익을 얻었다는 책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김의수 팀장은 그런 것들이 주는 허황된 기대에 휘둘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어느 날, 대치동에 15억 원짜리 아파트와 10억 원의 현금을 가지고 있고, 미술학원 네 개를 운영해 월 800만 원의 수입을 올리는 사모님이 찾아왔습니다. 앞날이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답니다. 반면에 또 한 고객은 연봉 4천만 원 정도인데 저축도 얼마 못하는 데도 정말 행복하게 살아요. 노후계획을 세워보니 이분은 한 달에 140만 원 정도면 지금의 행복지수가 지켜질 것 같았습니다. 140만 원 만들기, 별로 안 어렵습니다. 국민연금 60만 원, 자녀가 둘이니까 각각 용돈 20만 원씩만 받으면 금방 100만 원이 되잖아요. 하지만 처음 말한 사모님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쓰려면 앞으로도 10년 동안 싫어하는 일을 죽어라 해야 했어요. 어떤 가족이 더 행복할 것 같습니까?”

재무컨설팅회사 TNVA 김의수 팀장이 물었다. 그가 우회적으로 말하고 싶어하는 바는 바로 이런 것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번다면, 그것은 벌어들이는 액수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평생 ‘돈 걱정 없는 우리 집’에서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최근에 펴낸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해외 MBA 출신 전단 아르바이트생

재무 컨설팅회사 TNVA 김의수 팀장 가족. 김 팀장은 요즘 중증장애인인 첫째 희은이의 특수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감회가 남다르다. “희은이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가 우리 가족이 가장 힘들었을 때거든요. 그런데 어느덧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간다고 하니까 마음이 뭉클합니다.”

“둘째 민수가 세 살 정도 되었을 때예요. 아이가 어느 때부터인가 매일 엄마를 보고 친한 오빠네 집에 놀러가자고 하더래요. 처음엔 여섯 살 난 그 집 아들이 민수에게 잘 대해주나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집 냉장고에 가득 쌓여 있는 치즈가 먹고 싶어서 매일 가자고 했던 거래요. 그 이야기를 듣고 ‘사람이 가난하면 딸에게 치즈 한 장 사줄 돈이 없구나’ 하며 아내 몰래 숨죽여 울었죠.”

부산에서 사업을 하는 부모님 아래서 유학까지 다녀오며 풍요롭게 살았던 김의수 팀장이 딸에게 치즈 한 장 사줄 수 없는 형편이 된 것은 IMF 때문이었다. 외국에서 MBA를 취득하고  아버지 회사에서 이사로 일하던 그는 IMF로 아버지 회사가 부도나자 25억 원대의 보증 빚을 안고 개인파산자가 되었다.

그는 겨우 구한 2천만 원을 가지고 부산을 떠나 과천에 16평 전세 아파트를 구했다. 장롱이 한 방에 다 들어가지 않아 나누어 놓고, 자다가 조금만 몸을 뒤척여도 가구에 부딪치는 집이었다. 개인 파산자라서 취직을 할 수도 없어 밤과 새벽엔 학습지 전단을 돌리고 낮엔 다니던 교회에서 40만 원을 받고 일했다.

그러나 그는 전단 돌리는 일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이, 빨리 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시간까지 재가며 일했다. 그러자 학습지 지국장이 과천시청 공공근로를 할 수 있도록 추천해주었다. 2~3개월 동안 풀 뽑기를 열심히 했더니 또다시 추천을 받아 데이터 입력부로 옮겼고 컴퓨터 실력을 인정받아 이번엔 엑셀, 워드 강의를 하게 되었다. 그 인연으로 안양의 한 중학교 특별활동 컴퓨터 교사가 되어, 처음에 60만 원이던 월급이 200만 원 정도까지 되었다. 마침내 생활보호대상자에서 제외되었고, 2000년에는 4천500만 원짜리 전세로 이사해 처음으로 한 방에서 잘 수 있었다.

“그때 아내가 저를 구박했으면, 그 모든 일에 전심을 다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전단 돌리는 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아내가 이렇게 저렇게 계산해보더니 한 달에 80만 원만 있으면 살 수 있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는 이렇게 60만 원, 100만 원이라도 벌어서 아내에게 가져다주면 우리 가족이 행복하겠구나 생각하고 열심히 했던 거죠.”

특별활동 교사로 일할 때 이런 일도 있었다. 면접을 위해 찾아간 그에게 특활 담당 선생님이 그가 능숙하게 다루는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말고도 나모웹에디터(홈페이지를 만드는 프로그램)와 포토샵을 아느냐고 물었던 것. 그는 취직을 해야겠기에 무조건 안다고 답하고 면접에 합격했다. 그리고 관련 책을 사서 그 두 가지 프로그램의 수업이 있을 때면, 전날 밤을 꼴딱 새면서 수업 내용을 미리 공부했다. 그렇게 두 달 동안 평균 수면 시간이 두 시간 정도였던 때도 있었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아내와 대화를 하라


그는 곧 분당의 컴퓨터학원에서 주부 대상으로 강의까지 하게 되었다. 디카 반을 만들어 사진 전시회까지 하면서 열심히 일했던 그는 주부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러다 같은 교회에 다니던 보험회사 지점장의 권유로 보험영업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컴퓨터 강사였을 때는 자신을 그렇게 좋아하던 주부들이 보험영업을 한다고 하자 그를 싸늘하게 대했다. 미리 약속을 하고 찾아가 인터폰을 눌렀는데도 기척이 없다가, 1시간 후 그 집에서 약속했던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전단을 돌릴 때 느꼈던 것보다 더 큰 모멸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고객의 입장에서 보험설계를 해주는 그의 영업 자세는 점점 소문이 났고, 연말에는 상까지 받을 수 있었다. 고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그는 보험영업보다는 재무설계 쪽에 더 큰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재무컨설팅 회사를 공동 설립하게 되었다. 고객들의 재무상담뿐 아니라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재무상담만으로 연봉 1억 원이 넘게 되었다. 서울에 올라온 지 6년 만의 일이었다. 그 무렵 2년간의 법정 소송을 통해 25억 원의 빚이 탕감되었다는 기쁜 소식도 들려왔다.

“억대 연봉자가 되자 주위 사람들이 월세를 내더라도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옮기라고 했지만 우리 가족은 한동안 6천500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살았습니다. 집보다 중증장애인 첫째 딸과 부모님의 용돈이 더 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별 불만 없이 내 의견을 따라준 아내 덕입니다.”

그는 부자가 되려면 부부 사이가 좋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자들은 감정적이라 아내와 간밤에 부부싸움이라도 하면 아침에 출근하면서 ‘에이씨, 나 오늘 일 안 해!’ 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저축을 하다가도 ‘아껴서 뭐해?’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 실제로 그는 적금을 들 때 0.5%의 추가금리 때문에 헌혈까지 하는 알뜰한 남편이 부부싸움 한 번에 술값으로 100만원이나 쓰는 것도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재무적 대화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경제상황 때문에 제 연봉은 최근 몇 년 중 가장 적습니다. 위기가 온 것은 아니지만, 올해도 주가가 금방 회복될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아내와 미리 대책을 세웠습니다. 지금은 아픈 아이 때문에 가사도우미도 쓰고 치료비도 월 200만 원씩 듭니다. 둘째 민수 교육비로도 30만 원씩 나가고 있지요. 대화를 나눈 결과 우선 제가 골프를 당분간 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수입이 더 줄어들면 가사도우미를 쓰지 않고 아내가 빨래를, 제가 설거지와 청소를 맡기로 했지요.”



지출은 물론 소득에도 한계를 정한다

그도 처음부터 아내와 ‘재무적 대화’가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익숙해졌을 뿐이다. 김 팀장 부부도 가끔은 티격태격 다투곤 한다. 그러다가도 곧 상황을 수습하고 재무적 대화로 넘어간다고 한다.

“재무설계를 할 때, 또 중요한 것이 가족 간의 합의점을 찾는 거예요. 저는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돈이 왜 필요한지, 돈이 있으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먼저 물어봅니다. 그러면 의외로 대답을 잘 못해요. 저는 그걸 계속 생각하게끔 하고 각자의 행복에 대한 생각이나 가치 기준을 맞추도록 하죠.”

김의수 팀장 역시 아내와의 긴 대화 끝에 합의점을 도출해냈다고 한다. 첫째, 한계를 정하고 살기로 했다. 그의 연봉은 가장 많을 때 4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회사와 집밖에 모르는 그이기에 연봉은 차곡차곡 쌓였다. 하지만 그는 아내와 ‘집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했기에 2억8천만 원을 들여 중곡동에 거주가 목적인 집만 하나 샀다. 그의 가족은 공기 좋고 볕 잘 들고, 온가족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욕조가 있는 그 집을 너무나 좋아한단다. 차는 그랜저로 만족하기로 한계를 정했다. 그러고 난 뒤 모인 나머지 돈 3억 원을 투자해 역삼동에 근사한 김밥 카페를 차렸다. 양가 부모님들이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카페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부모님들의 생활비로 드리고 있다. 다행히 카페는 무척 잘된다고 한다.

“아내는 형제 중에 혼자 대학을 나와 약사로 일했어요. 첫째 아이가 아파서 직접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두었지만, 아내로서는 가족들에게 무척 미안했을 거예요. 들어보니 원래는 친정에 매달 생활비를 100만 원씩 드리려고 했대요. 부도가 나는 바람에 그 돈 한 번 드려보지 못하고 서울로 쫓겨와 마음 한구석에 항상 미안함이 있었는데, 그걸 요즘 조금씩 풀고 있죠. 저도 어려운 부모님을 도와드리니 행복하구요. 삶이 얼마나 풍성해졌는지 몰라요.” 

지금 그의 연봉은 최고였던 때의 거의 반도 되지 않는다. 아침부터 밤까지 회사에 매여 일하지 않기 위해 직위를 내려놓고 프리랜서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에게 필요한 돈은 충분히 벌고 있으니 더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일찍 집에 들어가 첫째에게 저녁을 먹이고 씻겨 재우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시간을 내어 둘째와도 진하게 놀아준다. 지방에서 강연 요청이 와도 그는 정중히 거절한다. 가족과의 시간을 희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돈은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보루

그는 두 시간 가까운 인터뷰 동안 수많은 재무적 조언을 했다. 그중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무턱대고 현실의 욕망에 휘둘리면서 불가능한 미래에 인생을 저당 잡히지 말라는 것.

“맨발의 기봉이가 마라톤 완주에 실패한 까닭은 페이스 조절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자폐 장애가 있는 사람은 자기 에너지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초반부터 죽을힘을 다해 뛰거든요. 그런 우를 범하지 말라는 거죠. 연봉 4천만 원을 버는 사람이 갑자기 연봉 1억 원이 될 수 없는데도 사회적 고정관념을 따라 소비하다 보면 어느 날 파산해버리고 비참한 노후를 맞게 되는 것이죠. 냉정하게 계산을 해보면 한정된 급여로는 사회에서 정해놓은 것들을 다 못해요. 어떤 것 하나를 할 때도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돈을 써야 할 때 못 씁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 교육비만큼은 양보하지 못하겠다면 5억 원짜리 아파트 대신 전세를 살고, 중형차 대신 소형차를 사면서 계획을 세워야 해요.”

재무학교를 열어 이제 막 결혼을 한 부부들이나 미혼 남녀들에게 재무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치고 싶다는 김의수 팀장. 그는 또한 20~30년 동안 재무상담을 꾸준히 해서 고객과 함께 늙어가는 라이프 코치가 되고 싶다고 했다.

“돈은 가족의 행복을 이어갈 수 있는 작은 도구일 뿐이에요. 돈은 인생의 모든 것이 아니지만, 또 없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죠.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도 행복할 수 없어요. 모든 이들이 자신이 필요한 만큼의 돈을 가지고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1 2008년 5월 강원도 대명 쏠비치. 2 2007년 화천 얼음축제에서. 3 2007년 10월 희은이 두고 처음으로 간 여행, 로마에서.
1 2008년 5월 강원도 대명 쏠비치. 2 2007년 화천 얼음축제에서. 3 2007년 10월 희은이 두고 처음으로 간 여행, 로마에서.


돈 걱정 없애주는 든든한 7단계 재무시스템


1단계. 월급으로 한 달 산다

당장 예비비나 은행 잔고에서 지난달 사용한 신용카드 결제 금액부터 해결한다. 은행 잔고가 바닥이거나 마이너스라면 앞으로 3~6개월간은 예비비를 모아 그 돈으로 밀린 카드값을 결제하고 지금부터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다.



2단계. 내가 얼마 쓰는지 알고 쓴다


가계부 항목은 가족이 쉽게 쓸 수 있도록 생활비, 교육비, 이자, 용돈, 보험료 등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들로 구분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다음 월급날까지 필요자금과 여유자금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어 사는 것이다.



3단계. 통장 쪼개기로 꼭 필요한 목돈을 만든다

생활비 외에 자녀교육비, 주택자금, 노후자금 등은 통장 쪼개기로 모은다. 통장 쪼개기를 할 때는 재무목표별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단기, 중기, 장기로 분산하여 투자한다.



4단계. 수시로 들어가는 돈은 따로 떼 놓는다

명절, 부모님 생신, 경조사비, 예상치 못한 비용 등의 예비비는 1년 예산으로 산정한다. 그런 후 예비비 통장을 따로 만들어 필요할 때마다 이 통장에서 빼서 쓴다. 비정기 지출을 위한 돈이 따로 없더라도 통장은 만들어둔다.



5단계. 월급날, 급여 통장 0원 만든다

4단계까지 실행했다면 이제 수입과 지출 항목을 정해 예산을 짠다.
생활비, 교육비, 용돈, 보험, 비정기 지출, 통장 쪼개기 등 각각의 통장으로 자동이체를 시킨다. 잉여자금도 적금이나 펀드 등으로 자동이체시킨다. 그래서 월급날 급여통장 잔고는 0원으로 만든다.



6단계. 5단계까지 매월 점검한다

5단계까지 시스템을 만들어 실행하다가 2~3개월이 지나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바뀐 시스템대로 적응하기까지 잘 참고 6개월 정도 계속하다보면 오래지 않아 돈 걱정 없는 7단계 재무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정착될 것이다.



7단계. 지금 당장 시작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현재 재무상황이 어떠하든 당장 시작해보라. 이 시스템대로만 살면 가정이 회복되고 돈 걱정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 여성조선
   취재 박혜전 기자 ㅣ사진 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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