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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합법인가, 불법인가?

입력 : 2010.03.29 09:09

수정 : 2010.03.29 09:09

흔히 낙태 문제를 이야기할 때, 두 사람의 생명을 이야기한다. 산모와 아이의 생명. 낙태의 매듭을 풀기 위해서도 두 가지 층위에서 접근해야 한다. 낙태 당사자, 그리고 낙태하게 만들어놓은 사회. 이 둘의 입장에서 함께 풀지 않으면 낙태 논란은 끝없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수십 년 동안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낙태, 그 불편한 진실


여성의 생존과 태아의 생명 사이에서 접점을 찾다

우리 사회가 낙태 문제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논쟁의 시작은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고소, 고발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젊은 산부인과 의사들의 모임인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2월 3일 불법 낙태시술을 해온 산부인과 병원 세 곳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최안나 프로라이프 의사회 대변인은 “지난해 10월부터 낙태시술 중단을 결의하고 정부의 단속을 촉구했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며 정부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앞으로 추가 고발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낙태근절 운동을 벌여오다 ‘동업자 고발’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이로부터 낙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 점화되었다. 



낙태 논쟁, 이대로 좋은가?

이번 고발사태가 몰고 온 파장은 대단했다. 실제로 낙태수술을 중단하는 산부인과들이 속속 늘고 있고, 병원을 방문했다가 거부당한 여성들의 제보도 줄을 잇는다. 여성단체로 걸려오는 전화 가운데도 낙태시술 병원에 대한 문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런 가운데 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충분한 사회적 논의 뒤에 중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병원들의 잇따른 시술 거부도 실제적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는 쪽에 가깝다. 메스를 잠시 내려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사회적 논란이 가라앉으면 시술은 언제든 가능할 것이다. 때문에 이번에 불거진 낙태 문제를 공론화하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사회적 공감을 얻을 필요가 있다.

낙태에 대한 논쟁은 어느 특정 계층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남성이기 때문에 혹은 임신과 출산 시기가 지났기 때문에 수수방관한다면 그것 역시 큰 잘못이다. 대한민국에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윗세대에서는 피임의 방법으로 낙태를 권유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도 했다. 앞으로 이런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노력해야 한다. 낙태 문제는 이처럼 모든 세대와 가정이 연관되어 있는 일이며,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현재의 문제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낙태 문제를 단순히 찬성과 반대로 양분화하는 태도이다. 찬성이냐 반대냐 하는 편 가르기식 접근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는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지 못하고 의미 없는 소모전으로 끝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에서도 찬반에 대한 이야기만 난무할 뿐 생산적인 논의는 겉돌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낙태에 관한 문제는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생명, 그 어느 지점에서 접점을 잡을 것이냐 하는 종교·철학·윤리·의학적인 복합논쟁이다. 여기에 사회구조적인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때문에 단편적인 사실을 토대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또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생존권을 대립 구도로 인식하는 태도도 위험하다. 신념과 상황에 따라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의 차이일 뿐 한 가지 입장을 표명했다고 해서 그 가치만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낙태, 합법과 불법 사이

현행 모자보건법 14조에서 허용하고 있는 인공임신중절의 합법적 조항은 다음과 같다.

●본인 또는 배우자에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에 의한 임신 ●인척간의 임신 ●임신이 임산부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이런 허용 조항도 임신 24주 이내에만 가능하고 그 외의 시술은 모두 불법이다. 따라서 미혼의 임신이나 자녀간의 터울 조절, 태아 기형 등을 이유로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낙태는 모두 불법이다(산모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백만원 이하의 벌금.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

2005년 당시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한 해 평균 34만 건의 인공임신중절수술이 이뤄지고 있으나 단속·고발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더라도 연 34만여 건의 낙태 중 95.6%가 모자보건법의 허용범위를 넘어서는 불법이라고 한다. 간혹 단속을 해도 대부분 모자보건법에서 예외 규정으로 둔 5가지를 준용해 기소유예나 선고유예로 끝나고 만다. 때문에 이 조항이 이미 사문화(死文化)되었다는 사회적인 평가와 함께 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현실과 법규범 사이의 괴리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며 세계 각국에서도 그 허용 범위를 놓고 논란이 거세다.

문제는 허용 범위에 대해 각 단체의 시각이 크게 엇갈린다는 데 있다. 종교단체에서는 생명의 중요성과 의학의 발달을 근거로 허용 범위를 더 줄여야 한다고 말하는 반면 여성단체에서는  실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법조항은 여성의 인권과 건강을 침해할 뿐 아니라 범죄자만 양산하게 될 것이라며 보다 현실적인 개정을 요구한다. 이런 논란은 의료계 내부에서도 존재한다. 낙태시술의 전면적 중단을 요구하는 프로라이프 의사회와 달리 산부인과의사회는 사회적·경제적 현실에 맞도록 허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무게를 싣고 합의점을 모색하고 있다.

산부인과학회 또한 법제위원회를 통해 모자보건법에 허용된 낙태 범위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으며, 기형아와 같이 의학적으로 논란이 있는 부분에 대해 어느 선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논의 중이다.



국내 낙태현황

● 한해 34만여 건 시술  ● 낙태 시술의 95.6%가 불법

● 전국 산부인과 병의원의 80%가 낙태 시술

● 낙태 시술의 96%가 임신 12주 미만


 ‘이럴 때는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각계의 찬성 의견 비율

 

프로라이프 의사회 윤리위원장 심상덕

 ‘침묵의 삼각 카르텔’이 문제 해결의 열쇠


계속된 인터뷰로 심상덕(아이온산부인과) 원장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동료 의사 고발로 의료계 내부의 반발은 물론 여성계의 질타를 받고 있는 프로라이프 의사회. 자기 고백과 철저한 검열 없이는 논란의 중심에 설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좋지 않은 목 상태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고 분명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고발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하게 된 것은 이런 견고한 고리를 책임 당사자 중의 하나인 의사들이 먼저 끊지 않으면 해결은 고사하고 공론화조차 어렵다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가난한 자나 장애를 가진 자처럼 사회적인 혹은 경제적인 약자를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회, 경제적 약자는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아는 이런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약한 처지에 놓여 있어서 말을 할 수도, 주장을 관철시킬 수도 없습니다. 그들을 대신해서 우리가 지켜주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겁니다.”

심상덕 원장은 낙태가 이렇게 무분별하게 이뤄진 것은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을 시작으로 펼쳐진 산아제한 정책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4.5명에 달하는 평균 출산율이 산아제한 정책 이후 평균 2명으로 반토막이 났고, 이런 잘못된 정책으로 낙태가 일상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낙태 문제의 실마리를 삼각 카르텔에서 찾았다.

“삼각 카르텔이라고 하는 것은 출산을 원치 않는 산모, 수술을 해주는 의사, 이런 현상을 방치하는 정부, 이 3자의 강한 결속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심상덕 원장은 특히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며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차원에서라도 획기적이고 과감하게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출산권을 지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면서 낙태 근절을 위한 5대 우선 정책 과제를 제안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에서 제시한 우선 정책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현재의 출산 장려금을 5배 이상 증액할 것, 2 두 자녀 이상의 가정에는 주택 분양이나 임대, 교육에서 우선순위를 주고 학비 보조금을 월 50만원 이상 지급할 것, 3 미혼모 시설과 영유아 보육시설 확충을 위한 즉각적인 계획안을 밝히고 미혼모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현재의 5배 이상 늘리며 미혼모 차별 금지법을 제정할 것, 4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모든 아이의 치료를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무료로 하고, 장애인 보조금은 월 50만원 이상으로 대폭 증액할 것, 5 초·중·고등학교에 피임 상담과 성교육을 전담하는 교사를 산부인과 전문의로 상근 혹은 비상근 배치하고 성교육 이수 시간을 연간 50시간 이상으로 대폭 늘릴 것.

생명윤리연구소 소장
구인회

어떤 중요한 가치도 생명 그 다음이다


구인회 소장은 “법만 지켰어도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낙태의 허용 범위가 보다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 소장은 태아를 초기 단계의 인간이라고 정의하며, 배아에서 태아로 이르는 일련의 과정 중 어느 단계를 인간으로 규정하고 보호해야 하는지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태아를 인간으로 보지 않을 근거 역시 어디에도 없다고. 인간이 되돌아가면 결국 배아로 갈 것이고 그렇게 뒤로 가다보면 인간의 시작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순간부터라는 것이다.

“사냥꾼들이 총을 가지고 사냥을 하다 보면 사람을 쏘는 사고가 나기도 하잖아요. 쏜 사람들은 짐승인 줄 알고 쐈다 그러지요. 그런데 움직이는 존재가 사람인지 아닌지 모를 때는 쏘지 않는 게 정상이에요. 인간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게 어디 있겠어요? 일단 살아 있어야 그 다음에 다른 가치들이 가능한 거지 죽고 난 뒤에는 꿈도 없고 뭔가 이룰 수도 없어요. 가장 근본적인 것은 생명을 존중하는 일이에요.”

구인회 소장은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일을 여성의 인권이나 권리로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기는 삶의 침해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태아와 임산부를 대립적인 존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단체나 생명윤리학회는 그 어떤 경우에도 낙태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10대의 임신이나 성폭력에 의한 임신의 경우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기 때문에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낙태를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아요. 낙태를 해도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은 엄청나거든요. 성폭행의 범죄자는 하나인데 피해자는 여성과 아이 둘이에요. 사실 아이는 죄가 없는 거잖아요. 아이가 범죄자로 인해 죽어야 하는 것이 꼭 옳은가. 그래도 삶의 기회는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구인회 소장은 낙태를 감행하게 만드는 이유들은 사회적 차원으로 풀고, 이목 때문에 못 낳는다가 아니라 낳아서 당당하게 키우자는 쪽으로 사회 인식이 전환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들의 삶과 경험을 존중해야


김두나 활동가는 처벌을 강화하는 것으로는 낙태를 절대 근절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음성적인 낙태시술로 여성의 건강과 생존이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여성단체가 낙태 근절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출산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는  출산과 양육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여성들에게 있다고 봅니다. 국가나 사회가 여성의 부담을 함께 나누지 않으면서 낙태를 전면 금지시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처사입니다. 이번 사태는 여성들의 몸을 통제하려는 반인권적인 발상일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처해 있는 절박하고 위급한 상황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고발조치 이후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 10여 개의 여성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낙태의 배경에는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삶과 경험이 존재한다”며 산모의 선택권을 주장했다. 또 거의 대부분의 낙태가 불법으로 규정되고 있는 현행법을 지적하고 실제 여성들이 놓여 있는 사회적, 경제적 조건이나 경험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경제적 사유가 허용범위 안에 포함되도록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두나 활동가는 낙태를 살인으로 규정하는 입장에 대해 “윤리적으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생명권의 주체로서 태아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아를 어떤 존재로 보는가, 생명이 언제부터인가 하는 논의는 누가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가치 판단의 문제입니다. 사회마다 다른 기준이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태아를 온전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낙태죄와 살인죄를 같은 정도의 수준에서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인 셈이죠. 또 인공수정의 경우 다태아가 생기면 당연히 축소술를 하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태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다고 봅니다.”

김두나 활동가는 사회, 경제적 개선만이 낙태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양육에 대한 책임을 남성과 국가가 함께 나누는 것은 물론 피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평등한 성적 관계, 비혼 여성의 임신이나 한부모 가정의 아이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사라지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낙태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강대 양성평등성상담실 교수
여성학자 변혜정

임신 중단 지속권을 달라


변혜정 교수는 흔히 사용하고 있는 ‘낙태’(落胎)라는 말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형법에서도 이미 불법이라고 규정한 단어인데다가 윤리적으로 ‘잘못’이라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변 교수는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면 의견을 종합하는 데도 이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용어 정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저는 임신중단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여성이 몸의 주체이니, 몸에 대한 결정권은 당연히 여성이 갖는 게 맞아요. 임신중단을 하고 싶은 여성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는 그 몸의 주체인 여성의 결정과 상황을 존중해야 하지 않겠어요?”

변혜정 교수는 여성의 삶과 경험에 대한 통찰 없이 추상으로 생명에 대한 주장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출산율 저하에 대한 한 방책으로 낙태 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경계했다. 
 
“정부는 제대로 된 실태 파악부터 해야 합니다. 그동안 낙태가 불법이라며 침묵해온 것은 사실이에요. 똑같이 불법으로 인정하고 있는 성매매 관련 통계자료를 꾸준히 축적하는 것과 대조적이죠. 2005년 통계가 그나마 공식적인데, 설문지의 질문은 물론 항목과 문항도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합니다. 단순히 ‘사회, 경제적인 이유’라고 추상적으로 표현할 것이 아니라 생활을 반영한 구체적인 내용이 있어야죠.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으니 제대로 된 정책도 내놓을 수 없는 겁니다.”

변혜정 교수는 임신중단을 할 권리는 물론 지속권도 보장해야 한다며 ‘처녀가 애를 낳아도 좋은 사회’와 ‘셋째, 넷째를 낳아도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 교수의 언급 속에는 미혼모나 싱글, 사생아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부터 경제적인 지원까지 함축적으로 나타나 있다. 일부에서는 경제적인 이유로 낙태를 하는 여성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해서 ‘이제는 아이 많은 집이 부잣집’이라는 자조적인 우스개마저 떠돈다. 때문에 예전과는 달라진 현재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예방적으로 모든 학교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피임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또 순결 중심의 성교육을 지양하고 ‘젠더 감수성’(남녀의 성 평등)을 포함한 교육을 통해 성에 대한 인식도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낙태 문제는 과연 ‘누구’의 행복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공방일 수도 있다. 그에 대한 저마다의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제도나 법의 개정에 이견이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낙태할 자유가 아니라 아이를 낳을 자유인지도 모른다.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자유와 환경. 이것이 주어진다면 ‘누구나’ 행복한 결말이 되지 않을까? 그 결말을 위해 우리의 고민은 오늘도 계속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낙태는 뜨거운 감자

인공임신중절(낙태)은 많은 나라에서 법으로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미혼 임신이나 미성년 임신, 출산 환경 등 ‘사회 경제적’ 요인에 의해 낙태를 법으로 인정하는 범위는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에서도  보수적인 주에서는 낙태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고, 진보적인 주에서는 낙태 허용 범위가 넓다. 어쨌든 미국 사회는 비교적 낙태에 자유로운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임 여성의 낙태율은 1천 명당 21명으로 한국보다 낮고, 낙태율은 1980년대 이후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1 ‘의외’로 낙태를 일부 허용하는 이탈리아

이탈리아의 낙태 허용이 ‘의외’인 이유는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이며 종교가 아닌 문화로서의 보수적인 가톨릭 전통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정책적으로는 일부 허용(청소년의 경우 임신 90일 내에 시술을 받을 수 있다)되지만 교황청과 일부 낙태 반대론자들은 공식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를 반대하는 시위도 하고 목소리도 높이곤 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낙태와 동성애, 안락사에 반대한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한편 2009년 겨울 이탈리아 의약품청(AIFA)은 경구용 낙태약 ‘RU486’의 발매를 정식으로 허가했다.

일반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은행원인 스테파니아 리치(38)는 낙태가 만연해질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특히 얼마 전, 아이가 장애아일 경우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가 논란이 되는 걸 보고 장애인을 우리와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고 귀찮은, 어쩌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2 낙태를 선택하는 것은 본인 의사 일본

일본의 낙태법은 ‘낙태를 희망하는 자는 본인의 의사만으로 낙태를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낙태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나 관습이 아니라 ‘여성 본인의 의사’인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1948년부터 비교적 일찍 낙태를 허용했다. 2차대전 이후 인구 팽창이 경제발전의 걸림돌이라는 사회 분위기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서는 조심스럽게 너무 쉽게 낙태가 가능한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젊은 층의 생각도, 낙태 제도는 유지되어야 하지만 세부적인 규제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토(28·여) 씨는 낙태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일본에도 한국처럼 구체적으로 해도 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해서 적절히 제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3 정부 주도의 낙태에는 반대한다 중국

중국은 13억의 인구 대국으로서 1970년대부터 전 국민에게 1가구 1자녀만을 허용하는 산아제한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낙태를 권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남아 선호 풍조 탓에 뱃속의 아이가 딸일 경우 낙태하는 관행이 널리 퍼져 있다. 이로 인해 신생아 성비의 불균형이 국가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2020년경에는 결혼적령기의 남성 2천4백만 명 이상이 짝을 찾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시민들 역시,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위협하는 강제적인 낙태시술에 반대한다. 특히 젊은 층의 경우 국가 주도의 산아제한에 대한 경계를 드러낸다. 인구조절이 필요하다면, 약물이나 검증되지 않은 방법을 쓰기보다는 안전한 피임법을 널리 알린다든지, 남녀를 평등하게 소중히 여기는 등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4 낙태를 금하지 않아도 낙태율이 낮은 나라 호주
 

호주의 대부분의 주는 산모의 건강에 문제가 있을 시에만 낙태를 허용한다. 낙태의 허용 시기는 각 주마다 내용을 조금씩 달리한다.  세계적으로 낮은 낙태율을 자랑하는 호주에서 낙태는 산모의 건강상의 문제가 있을 때만 행해지는 수술 중 하나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비결은 체계적인 카운셀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  당사자뿐만 아니라 남편이나 파트너 또는 가족까지 상담의 대상자로 확대해 총체적인 테라피가 이루어지고 있다.

회사원 보니(34) 씨는 낙태는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호주인들의 이런 의식 때문인지 거리에서 장애아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을 자연스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장애인들이 일반인들과 생활하는 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1천7백96명 대한민국 여성에게 낙태에 대해 물었습니다.


낙태수술에 대해 어떻게 행각하시나요?
 ‘허용 43%, 반대 40%, 찬반 팽팽’

모자보건법상 허용되는 합법낙태의 범위는 매우 엄격하다. 그럼에도 낙태율은 1천 명당 31명으로 OECD국가 가운데서 꽤 높은 편이다.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인지 찬성과 반대가 팽팽하게 맞서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여성조선>이 여성포털 ‘이지데이’ 회원 1천7백9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의 결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낙태수술에 대한 허용과 반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것이다.



1 낙태수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낙태에 대한 찬반은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해 갖는 권리, 생명윤리, 미혼모에 대한 인식 등 다양한 층위를 아우른다. 그러다 보니, 각계각층의 입장에 따라 대답도 달리 나온다. 대체로 여성단체에서는 찬성, 종교단체에서는 반대, 정부는 부분 허용 입장이다. 설문 결과도 낙태수술에 대해 ‘있어야 한다’ 43.8%(7백86명),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40.7%(7백31명)로 팽팽했다. 그런가 하면, ‘입장을 정하지 못하겠다’고 답한 응답자도 15.5%(2백79명)에 이르렀다.


2 반대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낙태를 금해야 한다고 답한 7백31명에게 다시 물었다. 낙태수술을 금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이에 대해서는 산모와 아이의 건강과 생명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태아의 생명을 앗아간다는 점에서 낙태도 일종의 살인행위라는 의견이 38.2%(2백79명), 임신부의 건강을 걱정하는 의견이 21.9%(2백60명)였다. 이밖에도 출산율이 저하된다는 대답이 5.1%, 종교적 신념 때문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3%로 뒤를 이었다.



3 허용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응답자 7백86명에게도 허용에 찬성하는 이유를 물었다. 응답자들은 대체로 사회, 경제적인 이유를 들었다. 산모가 원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42.2%(3백32명), 장애인처럼 문제가 있는 아이는 ‘태어나서도 사는 게 힘드니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23.8%(1백87명), 낙태수술을 무조건 금지할 경우 출산율 문제나 유기아동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될 거라는 의견이 13.0%(1백2명)였다. 



4 낙태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찬반에 대한 입장은 극단적으로 갈리지만, 해결에 대한 생각은 비슷했다.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7.2%(8백48명)가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건강한 임신과 출산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답했고, 병원 관리를 철저히 해서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34.4(6백17명)%였다.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견이 9.7%(1백75명). 국민투표를 통해 합법과 불법을 명확히 하자는 의견은 2.4%에 그쳤다. 아직은 결론을 내기보다는 의견을 나누는 시기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 여성조선
  취재 강보라ㅣ사진 신승희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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