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국 상속부자 … 일본은 장인·미국은 창업부자

      입력 : 2008.07.14 09:05 | 수정 : 2008.07.14 09:05

      한·중·일·미 3대 부자 집중 비교

      닌텐도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비디오 게임 사업을 시작한 지는 불과 20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화투를 만드는 것을 가업으로 한 집안의 부잣집 아들로 1927년에 태어났다. 1945년 와세다대학 법학과 야간과정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조부가 병으로 쓰러지자 22살의 나이로 닌텐도 사장에 취임했다. 사장 취임 이후 닌텐도는 업계 최초로 얇은 플라스틱을 사용한 트럼프를 개발해서 일본의 트럼프 시장을 휩쓴다.

      이어서 야마우치 히로시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의 트럼프와 게임 시장을 둘러본 후, 트럼프 업계가 아닌 다양한 산업 분야로 진출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의욕적으로 시도했던 식품 산업, 택시, 호텔 경영, 교육 등이 모두 실패하고 1960년대 후반 닌텐도는 도산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백화점 등 전국적으로 구축된 네트워크는 이후 닌텐도가 급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동서양간 부의 세습에는 커다란 차이

      부의 상속과 이전은 동서양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난다. 부의 세습은 세금을 제대로 낸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세금을 제대로 내고 나면 재산 상당 부분이 날아가 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부자로서는 배가 아프지 않을 수 없다.

      막대한 타격을 입은 닌텐도는 결국 자신들이 갖고 있는 화투장, 트럼프 등 게임에 대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오락기구 산업에 전념하게 된다. 그리고 1979년에는 세계 최초의 휴대형 게임기 ‘게임&와치(Game & Watch)’를 발매해 대히트를 거둔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휴대용 게임기 게임&와치의 이익금을 재투자해 1983년에 패밀리 컴퓨터라는 게임기를 출시하는데, 이것이 공전의 대히트를 함으로써 게임 기업으로서 닌텐도의 지위를 확고히 구축하게 됐다. ‘패밀리 컴퓨터’를 계기로 트럼프와 화투를 일본 내수용으로 판매했던 작은 회사가 단기간에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진 글로벌 컴퍼니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장수기업을 대표하는 기업은 일본 건축회사 곤고구미(金剛組)다. 578년 쇼토쿠(聖德) 태자의 초청으로 백제에서 건너간 곤고 시게미쓰(金剛重光·한국명 유중광)에 의해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곤고구미는 과거에는 사찰과 성 등을 지었으나 요즘에는 빌딩, 아파트, 단독주택 등 현대식 건물도 건설하고 있다. 곤고구미의 정신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노렌은 지킨다”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노렌은 상호가 그려진 무명천으로 곧 신용을 뜻한다. 사실 ‘메이드 인 제팬’이란 명성은 장인정신으로 대변된다. 일본에는 아직도 ‘모노쓰쿠리(물건 만들기)’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젊은이가 많은 것도 이런 정신에 맞닿아 있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

      혹독한 시련기를 맞고 있는 삼성그룹을 보면 그렇다. 삼성특검을 받은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지난 6월 경영 일선에서 퇴진했다. 이병철 전 회장이 1938년에 삼성상회를 설립한 지 꼭 70년 만이다. 최근 불거졌던 삼성의 차명계좌 문제도 이재용에게 부와 경영권을 동시에 승계하려는 과욕이 원인이었다. 삼성애버랜드 불법 전환사채 발행이나, e-삼성의 부실을 계열사가 떠안게 된 것도 승계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 이는 현대그룹도 비슷하다. 현대가 역시 비자금 조성 혐의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워렌 버핏은 부를 다음 세대에 넘기는 것에 대해 명백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는 부의 상속에 대해 자녀들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정도의 돈만 물려줄 것이라고 천명해 왔다. 그는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나 같은 부자의 유산을 조금 더 빼앗아가는 것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며 상속세 옹호론을 펼치기도 했다. 올 주주총회에서 원렌 버핏은 그의 투자 사업을 계승할 더욱 젊은 후계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 워렌 버핏은 자신의 전 재산 대부분을 자선단체인 ‘빌&멜린다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기부할 재산은 310억달러에 달한다. 역사상 가장 큰 기부금액이다. 워렌 버핏은 평생 동안 인내와 믿음으로 새로운 기회를 바라는 곳에 장기적인 투자를 해왔다. 따라서 그의 기부는 새로운 투자로 볼 수도 있다. 기존과 다른 것이 있다면 단지 투자의 대상이 기업에서 사람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빌 게이츠 회장도 공식 은퇴 후 자선사업에 주력하게 된다. 멜린다의 주도로 2000년 설립된 재단의 현재 자산은 330억달러. 빌과 멜린다의 결혼을 주선한 워렌 버핏이 낸 돈 34억달러도 포함돼 있다. 빌 게이츠는 580억달러에 달하는 재산 중 1000만달러 정도만 세 자녀에게 물려주고 나머지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실현할 재단에 출연하기로 공약했다. “부에는 항상 책임이 따른다”는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중국의 최대 부자로 떠오른 양후이옌은 지난 5월 쓰촨성 대지진 발생 후 300만위안의 구호금을 전달하는 등 사회사업에도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된 양후이옌의 재미있는 일화. 양후이옌은 지난 2002년 어느 날 부친인 양궈창에게 전화를 걸어 “가난한 집 아이들을 위해 무료 학교를 짓겠다고 하고선 왜 아직 실천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당시 양궈창은 “재산은 나중에 모두 네 것이 될 테니까 좋은 일은 네가 다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양후이옌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은 빨리 할수록 좋은 것”이라고 말해 부친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같으면서도 다른 부자 스타일

      동서양 부자들의 스타일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워렌 버핏의 연설은 날카로운 비즈니스적인 해석과 유머러스한 것으로 유명하다. 네브라스카 오마하에서 매년 열리는 버크셔 헤더웨이 주주총회의 연례보고서 등에서 워렌 버핏은 성경에서부터 미국식 농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적 수사법을 사용한다.

      지난 5월 버크셔 헤더웨이의 주총장. 단상에 찰스 멍거 부회장이 나타나 “버핏이 버크셔 헤더웨이를 떠나기로 했으며, 미모의 드라마 주인공인 수전 루치와 직업을 바꾸기로 했다”고 발표한다. 수전은 “신임회장으로서 배당률을 높이겠다”고 말한다. 일순간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  워렌 버핏이 등장해 수전과의 계약서를 찢어버리며 “나는 버크셔 헤더웨이를 떠날 수 없다”고 외친다. 이 한편의 코미디에 주주들의 버크셔 헤더웨이에 대한 애정이 깊어간다.

      야마우치 히로시 닌텐도 전 회장 / 모리 아키라 모리트러스트 사장 / 부수지마 후지오 산쿄 회장

      워렌 버핏은 브리지 카드게임을 굉장히 즐기는 편이다. 일주일에 12시간을 브리지 게임으로 보낼 정도다. 게임 상대방은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다. 그는 2006년에는 브리지 게임 대회인 버핏컵을 후원하기도 했다. 이 대회는 골프의 라이더컵을 모델로 한 것으로 미국과 유럽간 브리지 게임 대회다. 워렌 버핏은 휴대전화가 없으며, 그는 책상에 컴퓨터도 두고 있지 않다. 그는 캐딜락DTS를 손수 운전하고 다닌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영락없는 동네 할아버지다.

      빌 게이츠는 6월27일 은퇴하면서 드러난 스티브 발머와의 불편했던 동거생활이 공개되면서 빌 게이츠 회장이 컴백할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는 지난 2000년부터 1년가량 엄청난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반독점 공세에 시달리던 MS는 명목상 권력 이양을 시도했다.

      2000년 1월 빌 게이츠가 CEO 자리에서 물러나고 최고 소프트웨어 개발책임자란 생소한 직책을 맡았다. 하지만 스티브 발머보다 하위 직급자가 된 빌 게이츠는 여전히 회사 내에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다. 빌 게이츠가 자신의 직급 이상의 역할을 하려 했기 때문이다. 결국 스티브 발머의 손에 넘어간 것은 명목상의 CEO 자리일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둘은 이때부터 한동안 끊임없이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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