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미

난소의 나이가 폐경 시기를 결정한다

여자조차 모르는 여자 몸 설명서

누구나 오래 살길 원하지만 늙고 싶지 않은 마음도 그에 못지않다.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한들 늙고 쇠약한 몸으로 이어가는 삶은 그리 달갑지 않다. 때로는 죽음보다 늙어가는 것이 더 두려울 때도 있다. 특히 나이든 여성에게는 불현듯 느껴지는 노화의 조짐이 예사롭지 않다. 눈가에 잔주름이 하나둘 늘고 피부의 탄력도 예전 같지 않아 거울 앞에서 한동안 망연자실하기도 한다. 까마득한 일로 여겨지던 ‘폐경’이 구체적인 느낌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만 같다.

그리스 신화 중에 늙고 싶지 않은 여성의 마음이 잘 드러난 대목이 있다. 트로이 부근에 사는 시빌레라는 여인이 있었다. 태양의 신 아폴론은 그녀의 미모에 반해 정을 통하였고 그 대가로 그녀에게 예언의 능력을 주었다. 아폴론은 그것으로 부족해 그녀에게 자신의 애인이 되어주면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시빌레는 모래를 가득 움켜쥐고 말했다. “이 모래만큼의 봄과 가을을 주소서.” 모래알이 어림잡아 수천 개는 될 정도였으니 시빌레의 소원은 결국 영원한 삶을 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불쌍한 시빌레, 그녀는 영원한 청춘을 달라는 말을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결국 늙어가며 몸이 쪼그라든 그녀는 병 속에 넣어져 동굴 천장에 매달려 오랜 세월을 살게 되었다. 자식들이 그녀에게 소원을 물었다. 마치 오래 전 아폴론이 그녀에게 물었던 것처럼. 그러자 시빌레는 한마디 했다. “죽고 싶다.” 시빌레에게는 늙고 쪼그라든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형벌이 아니었을까.

여성이 특히 노화에 민감한 것은 생리라는 특수한 상황을 매달 겪기 때문일 것이다. 생리가 불규칙해지거나 배란이 잘되지 않을 때, 여성들은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간혹 육체적인 나이에 비해 난소난자의 저장고가 일찍 노화되는 여성이 있다. 이런 여성들은 결혼을 해도 임신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8~9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기억에 뚜렷이 남는 여성이 있다. 나이가 34세였던 이 여성은 무려 열여섯 번의 시험관 아기 시술 끝에 어렵사리 아기를 낳는 데 성공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성공하기까지 열다섯 번의 시험관 실패는 그야말로 천형이라고 할 정도로 힘든 과정이었다. 보통의 여성들은 서너 번 시험관 아기 시술에 실패하면 좌절하기 마련인데 이 여성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 여성의 반복되는 실패 원인은 난소의 저반응 때문이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할 땐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주로 과배란을 유도한다. 한 달에 한 개만 배란난자가 난소에서 배출되는 현상되는 자연 배란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임신율이 낮아서 선호하는 방법은 아니다. 과배란 유도는 배란 유도 주사로 많은 수의 난자를 자라게 하는 것이며 자란 난자들은 모두 채취되어 남편의 정자와 수정 과정을 거친다. 남편의 정자와 수정된 난자는 시험관 내에서 배양된다. 배양 기간은 이틀에서 닷새 정도이다. 그렇게 배양된 수정란 중에 가장 우수한 것을 2~5개 골라서 여성의 자궁 안에 넣어주는 것배아 이식이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는데 어쩌다가 수정란이 모두 착상에 성공하면 네 쌍둥이, 다섯 쌍둥이가 되기도 한다. 대개 30대 중반의 여성이 과배란 유도 주사를 맞으면 열 개 정도의 난자는 쉽게 키울 수 있다. 그러나 난소 반응이 나쁜 경우에는 아무리 주사를 많이 맞아도 난자가 한두 개 정도만 자라거나, 전혀 반응이 없어서 하나도 자라지 않는 여성도 많다. 주사에 대한 난소의 반응이 낮으면 시술의 성공률은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다. 8~9년 전 그 여성의 난소 반응은 최악이었다. 어떨 때는 난자가 아예 자라지 않아 주사를 중단할 때도 있었으니까.

난소에서 난자의 배란이 멈추는 것을 폐경이라고 한다. 난소가 제 기능을 다하고 그야말로 ‘폐업’을 하는 것이다. 한국 여성들의 폐경은 보통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즈음에 오는 편이다. 여성에게 폐경은 사춘기 못지않은 호르몬의 대변혁을 의미한다. 대개의 여성들은 폐경을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적응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더 이상 생식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침울하게 받아들인다. 다시 시작한다는 뜻의 ‘갱년更年’이 아니라 폐품을 연상시키는 ‘폐경閉經’이란 어감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또 여성들은 생식 능력을 다하는 폐경이 되면 여자로서의 성적 매력까지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오해 때문에 더욱 상처받고 자신감을 잃게 된다. 심리적인 좌절감은 우울증이나 불면증 등을 더 악화시키게 마련이다.

요즘은 40세 전에 폐경이 되는 여성도 많다. 이를 조기 폐경이라고 하는데 백 명 중 한 명꼴로 이 불운을 맞는다. 조기 폐경은 특히 결혼과 임신을 앞둔 미혼 여성에겐 그야말로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여성은 태어날 때 이미 평생 쓸 수 있는 난자 수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폐경이 되면 난소에 난자가 하나도 없게 된다. 임신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만일 임신을 원하면 다른 여성의 난자를 공여제공받아야 한다.

현대 여성은 폐경 이후에도 30년 정도를 더 살지만 원시 시대 여성의 수명은 폐경 시기와 어느 정도 일치했을 것이다. 폐경은 곧 ‘임신 불가능’을 의미하지만 사실 여성의 임신 능력은 폐경 훨씬 이전부터 현저하게 떨어진다. 폐경을 기준으로 13년 전부터 임신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다른 포유류 동물보다 현저히 미숙한 아이를 낳은 뒤 10여 년 정도는 양육을 해야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으로 안정이 되기 때문에 폐경이 되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낳은 아이를 키울 기간을 벌기 위한 진화의 결과로 여겨진다. 여성마다 폐경의 시기는 다르다. 분명한 건 아기를 많이 낳을수록 폐경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아이를 임신하고 젖을 먹이는 동안 난자를 쓰지 않고 축적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사춘기를 맞을 즈음 난자를 배란하기 시작한다. 태어날 때 모체로부터 받고 나온 20~30만 개의 난자 중 매달 한 개의 난자를 배란하니 마흔 나이에도 거뜬히 임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게 단순한 수학 계산과는 다르다. 난소는 수백 개의 난자 중에 가장 우수한 것 하나만을 골라서 배란하기 위해 한 달에 수백 개의 난자를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사춘기 무렵에 배란되는 난자들은 무척 질이 좋다. 정자를 쉽게 받아들이고 자궁 내막에 착상도 잘 된다. 손만 잡아도 임신이 될 정도라는 표현은 이런 연유에서 생긴 말이다. 난자의 질은 나이에 비례해서 나빠진다. 30대 중반을 넘으면 좋은 난자들은 이미 다 써버렸기 때문에 상태가 좋지 않은 난자들만 남아서 정자를 기다리게 된다. 이 무렵에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것은 견우와 직녀의 해후보다 더 힘들어진다. 폐경을 13년 정도 앞둔 시기부터 이런 현상이 생긴다.

사실상 폐경이 되기 5~6년 전부터는 생리도 불규칙해진다. 난소의 기능이 떨어지는 초기에는 생리 주기가 빨라진다. 28일마다 규칙적으로 생리를 했던 여성이 난소 기능이 떨어지면 23~26일마다 하게 된다. 그러다가 2~3년이 지나면 거꾸로 40~50일 정도로 길어지다가 급기야 생리가 정지된다. 폐경이 된 것이다. 생리 주기가 길어지는 기간에는 신체적으로 확연한 증상이 나타난다. 가령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가 갑자기 식거나 식은땀이 시도 때도 없이 흐르기도 한다. 또 불면증이 생기고 우울해지거나 초조해지는 증상들이 바로 폐경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신호다. 

조기 폐경은 백 명에 한 명꼴로 그리 흔한 현상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난소 조기 노화라는 질병이다. 주로 생리 주기가 빨랐던 여성에게 쉽게 온다. 그녀들은 나이가 들어서 주기가 짧아진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주기가 23~26일 정도로 빨랐으며 어머니와 자매가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난소 조기 노화 증상은 골반에 다른 질병이 있어서 수술을 했거나, 골반에 심한 염증을 앓았던 여성에게서도 잘 나타난다. 또 자궁 내막증이 심하거나 담배를 많이 피우는 여성에게도 흔하다. 특히 난소암이나 자궁암으로 화학 요법이나 방사선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여성들은 열 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할 정도로 심각하다. 만약 난소 조기 노화로 42세에 폐경을 맞게 될 운명의 여성이라면 그 13년 전인 29세부터는 임신이 곤란한 시기에 접어든다고 할 수 있다. 이 여성이 30세에 결혼했다면 곧바로 불임 전문 의사의 도움을 받더라도 임신이 쉽지 않을 것이다.

불임은 특별한 원인을 발견할 수 없는 경우가 20%에 달한다. 난소 조기 노화 환자라도 검사를 받으면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얘기를 듣기 쉬운데, 실제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임 여성의 절반이 바로 난소 조기 노화 환자들이다. 이런 여성들은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해도 난소 저반응으로 인해 실패를 거듭할 확률이 높다.

여성에게 난소는 생식 능력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곳이다. 난소가 노화되기 시작하면 난자의 질이 나빠져서 임신이 잘 안 되고 기형아 임신의 위험이 높아진다. 게다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나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같은 성 호르몬의 생산 능력도 떨어진다. 몸 속에 흐르는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줄어들면 우선 외모에서 징후가 나타난다. 특히 젊은 나이에 여성 호르몬이 없으면 피부가 얇고 투명해지며 피지가 줄어들어 번들번들한 느낌이 없어지기 때문에 피부가 깨끗하다는 인상을 풍길 수 있다. 생식기가 기형이거나 문제가 있는 여성이 유독 피부가 곱고 얼굴이 무척 아름다운 경우가 많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밝혀진 것이 없지만 3만여 명의 불임 여성을 진료해온 경험으로 봤을 때 뚜렷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의학적으로 AIS 증후군남성 호르몬 저항 증후군이나 MRK 증후군이라는 기형이 있다. AIS 증후군은 유전자는 남성이지만 남성 호르몬에 대해 생식기가 반응을 하지 않아 남성 성기도 생기지 않고 여성의 성기도 생기지 않는 선천성 기형을 말한다. 반면 MRK 증후군은 유전자는 여성인데 자궁과 나팔관과 질이 생기지 않는 선천성 기형이다. 이 증후군의 여성들이 공교롭게도 외모가 아주 빼어난 경우가 많다. 이런 여성들은 생식기가 없어 임신은커녕 성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생식에 있어서 ‘팜므 파탈’이다. 선조들이 ‘여자가 너무 예쁘면 얼굴값 한다’고 했던 말이 혹시 이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남성들이 지나치게 아름다운 여성을 배우자로 삼기를 무의식적으로 회피하는 것도 진화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난소 조기 노화 여성들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피부를 소유한 경우가 많은데 그리 오래지 않아 피부 밑의 결체 조직들이 사라진다. 피부가 얇아지면 고운 피부가 주름으로 바뀌고 기미로 뒤덮이게 되는 것이다. 난소 조기 노화가 오기 쉬운 여성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여성 스스로 진단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생리 주기가 빠르고 초경이 다른 여성들보다 지나치게 빨랐다면 걱정해봐야 한다. 결혼 전에 자궁이나 난소, 나팔관 등을 수술한 적이 있거나 염증을 앓았던 여성은 가능하면 결혼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 임신과 출산이 꼭 결혼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닐지라도 혹시 원할 때 이룰 수 없다는 것은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자매 중에 이 증상이 있다면 예사롭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20대의 젊은 나이라도 결혼 후 1년 안에 임신이 되지 않을 때는 곧바로 불임 전문 의사에게 찾아가는 것이 고생을 덜 하는 길이다. 나이가 젊고 겉으로 건강해보여도 난소가 부실하면 아무리 ‘하늘’을 뚫어지게 쳐다봐도 ‘별’을 딸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임기 여성의 생명은 생식력에 있고, 여성의 건강은 곧 난소의 건강이다.

  • 도서명 : 여자조차 모르는 여자 몸 설명서

  • 저자 : 이성구

  • 출판사 : 조선일보생활미디어

  • 가격 : 9,800원 

  • 책소개 : 아기를 잘 만드는 의사 이성구의 여자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