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이현호와 방배동 사무실

    입력 : 2009.10.27 09:05 | 수정 : 2009.10.27 09:05

    자연과 소통하는 공간을 그리다_7

    화이트 벽과 나란히 정렬된 사각의 책상, 그리고 투명한 유리벽이 전부인 건축가 이현호의 사무실 키아즈머스(chiasmus). 간결하게 꾸며진 사무실이 비범해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특별한 건축 철학에서 나오는 완벽한 프로젝트 때문이 아닐까.


    단정하고 깔끔한 화이트 셔츠 같은 작업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방배동의 주택가에는 건축가 이현호의 아지트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막 세탁을 마치고 다림질한, 개운하고 단정한 화이트 셔츠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근사하게 보이기 위한 장식 요소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래서 순수하고 담백한 그의 사무실 안에는 화이트 벽과 공중에 떠 있는 듯 줄지어 대롱대롱 달린 천장의 조명, 그 아래로 나란히 놓인 직원들의 책상이 전부다.

    대부분 건축가들의 집무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이곳의 구조는 조금 특별하다. 미국 피터 마리노의 사무실에서 유일한 동양인으로 함께 일했던 것을 계기로 파트너가 된 제임스 키와 집무실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반듯하고 널찍한 책상 두 개가 놓인 모던한 집무실은 투명한 유리 벽면이 사무실과의 경계를 긋는 도구로 사용되어 실질적으로는 전체가 소통의 공간으로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인다. 콘크리트 벽면을 따로 만들어 완벽히 독립적인 공간으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좁은 공간이 더 답답해 보이게 될 것 같아 유리벽으로 그 역할을 대신했다고. 이 투명한 유리벽은 직원들과의 회의 때나 중요한 스케줄을 메모해두는 칠판으로, 때로는 도면을 그리는 용지 대신 사용하고 있으니 여러모로 요긴한 아이템이 되었다.


    1 스케줄을 적어놓은 메모판 역할을 하고 있는 유리벽.
    2 벽 한 면이 모두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채광이 좋다.
    3 스케치가 그려진 유리벽은 그 어떤 그림 액자보다도 멋진 소품이 된다.
    4 화이트 벽과 제법 잘 어울리는 레드 컬러의 조명.
    5 강원도에 세워질 5채의 각기 다른 주택의 모델.
    6 모 회장의 주택을 짓기 위한 것으로 무려 10개의 모델을 작업했다.
    7 책장 대신 책상 뒤 벽 한 면 전체에 설치한 선반에는 다양한 분야의 책과 도면, 모델과 오디오가 놓여 있다.

    대지와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건축가 이현호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보수적인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의 미대 진학은 분위기상 녹록지 않았다고. 그래서 결정한 진로가 건축학과였다. 건축학과만 들어가면 좋아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대학 시절 충실한 학생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소위 운동권 학생으로 불리기도 했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생각에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그때 접했던 다양한 경험들은 지금 그의 건축 프로젝트에 모두 녹아 있으니 그의 건축 공부는 조금 특별했던 셈이다.

    “건축가는 사회적 관계가 넓지 않으면 안 돼요. 건축하는 사람이 저를 찾아와서 집을 지어달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학창 시절 만났던 동아리 친구들과 사업가, 음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의 꾸준한 교류는 설계 작업에 많은 도움을 준다. 지난 5월에는 7명의 건축가와 6명의 예술가가 함께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을 주제로 전시를 열기도 했는데 이렇게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한 프로젝트는 건축을 보다 대중과 가깝게 만들어준다고 그는 믿는다. 그가 늘 마음에 담고 있는 건축가의 자세란 바로 대지와 사람을 존중하는 것. 집이 지어질  대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대지와 조화로운 집을 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사람에 대한 존중이다. 집을 지으려면 그 집에서 앞으로 살 사람들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고 그것을 통해 그 집에서 생활할 사람들을 존중한 집을 지을 수 있다. 때문에 건축가는 다양한 분야,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은 그에게 있어 세상을 배우는 가장 좋은 도구다.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실내건축학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건축 일을 하면서 가장 뿌듯한 것이 바로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그가 다듬어낸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우리의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어나가는 작고 큰 빌딩들을 디자인한다고 생각할 때 건축가로서 그는 흥분되고 행복해진다.

    “요즘 집들을 보면 외형적인 형태에 더 치중할 뿐 공간이 주는 안락함과 중요성을 점점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래서 저는 늘 학생들에게 도면에 자신을 집어넣어서 공간을 느끼라고 말해요.” 

    올해로 나이 40에 접어든 그는 15년 후에는 건축 말고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그 이유는 바로 인생이 너무 짧아서라고 하니 차분한 외모 뒤에 숨겨둔 무한한 열정을 살짝 엿보는 듯하다. 그는 한 가지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앞으로도 스타일리시한 건축가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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