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사 가는 돌계단 오르며 천재들 파란만장 삶 ‘반추’

      입력 : 2009.12.21 08:49 | 수정 : 2009.12.21 08:49

      일엽스님과 수덕사

      수덕여관, 70여 년 동안 시인 묵객 사랑받아

      (위) 항상 산문이 굳게 닫혀 있는 소림초당 (아래) 소림초당 앞에 놓인, ‘출입금지’라 적은 기왓장
      수덕사 입구에는 정감이 가는 초가집이 있다. 수덕여관이다. 지금은 미술관으로 바뀌었지만 70여 년 동안 시인묵객의 사랑을 받았던 여관이다. 그 중에는 일엽 스님과 나혜석이 있다. 일엽 스님이 자신을 찾아온 아들과 상봉한 곳도 이곳이었다. 일엽 스님이 자신을 찾아온 아들을 매정하게 뿌리치자 나혜석은 모성에 굶주린 아이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자신의 젖무덤을 내주기도 했다.

      출가를 결심한 나혜석은 수덕여관에 5년 동안 머물렀다. 그때 그를 찾아온 것이 고암 이응로다. 고암은 나혜석의 제자로 그의 그림과 바람처럼 살아온 날들을 동경했다. 훗날 고암이 본부인을 버리고 21살 연하의 연인과 함께 파리로 훌쩍 떠났던 것도 나혜석의 영향이 컸다. 고암은 나혜석이 떠난 뒤에는 아예 수덕여관을 매입해 본부인에게 운영을 맡겼다.

      이처럼 숱한 이야기를 간직한 수덕여관이지만 지금은 모두 옛일이 됐다. 일엽 스님도, 어머니를 찾아 이곳을 찾아왔던 아들-훗날 그도 머리 깎고 중이 되었다-도, 나혜석도, 고암도, 고암의 본부인도 모두 세월 속으로 사라졌다. 다만,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고암이 이곳에서 몸을 추스를 때 바위에 새겨 놓은 암각화만이 한 시대의 증인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수덕여관을 지나면 바로 수덕사 일주문을 넘어서게 된다. 수덕사는 일주문과 절 건물 사이에 으레 있기 마련인 진입로가 없다. 일주문 밖으로 한 걸음만 나가면 상가와 식당이다. 일주문 밖이 사바인 셈이다. 예전에는 일주문에서 절까지 짧지만 활처럼 휘어져 돌아가는 길이 있어 한적한 맛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대웅전을 향해 곧장 으리으리한 돌계단을 놓아 풍치를 잃었다. 

      일주문을 지나면 대웅전까지 계단이 이어진다. 중간에 천왕문을 비롯한 누각이 계단을 이루며 자리한다. 계단 마지막을 지키고 선 황하정루를 지나면 눈에 익은 건물 하나 올려다 보인다. 대웅전이다. 국보 49호인 대웅전은 수덕사의 얼굴이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고건축물로 불린다.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건립됐으니, 700년 세월을 견뎌온 셈이다. 숱한 전란을 용케도 피한 채 지금까지 건재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대웅전은 미학적 관점에서도 매우 높은 점수를 받는다. 기교나 화려한 장식을 생략한, 단순하면서도 균형감을 강조한 맞배지붕 건물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다. 대웅전의 균형미와 안정감은 정면에서 보는 것보다 측면에서 볼 때 한결 돋보인다. 측면은 다섯 개의 배흘림기둥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돌출된 들보가 아름답게 면을 분할하고 있다.

      대웅전 마당에서 바라보는 세상도 시원하다. 축대를 쌓아 올린 마당의 끝에는 느티나무 고목과 노송이 선승처럼 서 있다. 그 뒤로는 사하촌과 마주선 산이 보인다. 특히, 마주보이는 산은 원근감으로 인해 수덕사를 꽤 높은 자리에 터 잡은 절로 여기게 만든다.  

      수덕사에서 정혜사로 오르는 길이 있다. 근대 최고의 선승으로 불리는 만공(1871~1946)의 자취가 어린 길이다. 만공은 나이 서른에 홍성 덕숭산 정혜사의 조실이 됐으며 숱한 기행으로도 유명하다. 이를 테면, 만공이 젊은 여자의 벗은 허벅지를 베지 않고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만공의 이같은 행보는 일곱 여자의 허벅다리를 베고 잤다는 ‘칠선녀와선(七仙女臥禪)’이란 말을 낳게 했다.
       
      수덕사에서 만공이 머물던 정혜사까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돌계단이다. 암자를 오르내리기 위해 조성한 길이다. 계단 수는 1020개. 혹자는 1200계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계단의 숫자는 의미가 없다. 분명한 것은, 1080배를 드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올라가기가 꽤나 힘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계단은 수덕사와 연을 맺은 일엽 스님과 나혜석, 고암 이응로 등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이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반추할 수 있도록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해준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mountainfire


      여|행|길|라|잡|이

      ★ 교통  서해안고속도로 해미IC로 나온다. 36번 국도를 따라 예산 방면으로 12km 가면 ‘수덕사’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를 따라 나와 덕산 방면으로 고개를 넘으면 된다. 해미IC에서 20분 소요.

      별미  수덕사 입구는 산채백반을 하는 집이 많다. 수덕여관은 없어졌지만 산채 상차림은 여전하다. 산나물과 제철에 맞는 신선한 채소류, 된장찌개, 굴비, 도토리묵, 메밀전, 버섯구이 등 20여 가지 반찬이 나온다. 여기에 북어처럼 찢어서 고추장에 재운 것을 화덕에서 구운 더덕구이까지 얹어줘야 제대로 먹은 것이다. 중앙식당(041-337-6677)의 산채더덕정식은 1인분 1만2000원. 덕산온천 지구의 장수갈비(041-338-3297)는 갈치와 고등어조림(9000원)을 잘한다. 생물을 이용해 무가 푹 무르도록 지져낸다. 

      볼거리  수덕사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덕산온천은 500년 전인 조선시대부터 욕객이 몰려들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일제 때 온천지구로 개발돼 해방 후에는 우리나라 제일의 온천관광지로 이름을 날렸다. 1990년대 후반 새 단장을 하고 나서 한해 평균 120만 명이 찾는다. 특히, 스파캐슬(www.m-castle.co.kr)이 온천수를 이용한 워터파크 ‘천천향’을 개장하면서 다시 옛 명성을 회복하고 있다. 천천향은 40여 종의 다양한 테마탕과 슬라이드, 파도풀 등의 물놀이시설을 갖추고 있어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다.

      숙박  수덕사와 덕산온천은 서울 기준으로 당일여행지로 충분하다. 덕산온천 지구 내에 50여 개의 숙박시설이 있다. 타워텔(041-338-1155), 퍼스트모텔(041-338-1077), VIP모텔(041-337-6748)이 최근에 신축한 모텔이다.


      / 이코노미플러스
        글·사진 | 김산환 여행작가 mountainfir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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