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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치고 수술하고 아이들 교육까지… '팔방미인' 로봇 친구들이 온다

로봇, 일상 속으로 성큼

용접 로봇, 달 탐사용 로봇, 지뢰 제거 로봇…. 산업 현장이나 첨단과학, 군사작전에 동원되곤 했던 로봇들이 일상생활 곳곳에 침투하고 있다. 골프 연습 상대도 되어주고, 안내 도우미 역할도 하며, 수술에서 집도의 역할도 하는 ‘서비스 로봇’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어느 40대 직장인의 주말 일과를 통해 생활 주변의 서비스 로봇들을 살펴본다.  

 “이런 또 졌네, 양용은이 울고 가겠어!”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에 사는 송영호(41·가명) 과장은 일요일 아침부터 분통이 터진다. 매주 일요일 오전마다 부천 로봇파크의 스크린골프장을 찾아와 퍼팅 로봇 ‘인버디’와 대결을 벌이지만 여태껏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로봇의 실력이 미국 PGA 챔피언십에 내보내도 손색없을 정도다. 공을 홀에 넣을 때마다 한 손을 번쩍 올리고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이 얄밉기만 하다.

인버디는 국내 스크린골프업체 디엠비에이치가 개발했다. 퍼팅만 할 수 있지만 사람과 골프 대결을 벌일 수 있는 로봇으론 세계 처음이라는 설명이다. 이 로봇은 스스로 스크린골프장을 돌아다니며 공의 위치와 홀 사이의 거리, 그린 상태를 고려해 채를 휘두른다. 스크린골프를 제어하는 중앙컴퓨터와 게임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최적의 각도와 힘으로 스윙할 수 있다. 송 과장이 질 수밖에 없다.

미국선 섹스 로봇 상용화 임박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송 과장의 분은 어느덧 가라앉았다. 사실 생각할수록 로봇과 시합을  벌인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누구든 로봇이라면 자동차 제작공정의 로봇팔이나 ‘태권V’ 등 공상과학만화 속의 거대 로봇을 떠올렸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교육·의료·문화 산업 등 생활 속 서비스 분야에도 로봇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퍼팅 로봇 ‘인버디’. 사람과 스크린골프 퍼팅 대결을 할 수 있다.
송 과장은 심지어 미국에선 섹스 로봇이 상용화 직전이라는 몇 달 전 신문기사가 떠올랐다.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성인용품엑스포(AVN)’에 소개됐다는 미녀 로봇이 주인공이다. 키 170㎝, C컵 가슴 사이즈를 가진 이 로봇은 주인과 대화할 수 있고 주인에게 애정 어린 이메일도 수시로 보내준다. 만져주면 “당신의 손길이 좋아요”라며 애교도 부린단다.

송 과장의 가족들도 요즘 곳곳에서 눈에 띄는 로봇들에게 푹 빠져 있다. 며칠 전 아내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로봇청소기를 사들였다. 반상회에 갔을 때 봐둔 이웃집 로봇청소기가 꽤 탐이 났나 보다. LG전자의 ‘로보킹 듀얼아이’라는 신제품으로 일반 진공청소기보다 4~5배 비싸다. 그러나 집안 구석구석을 혼자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쓸고 닦는데다, 배터리가 부족하면 알아서 충전대로 이동하는 게 송 과장이 봐도 신통하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성철이는 며칠째 로봇이 갖고 싶다며 울상이다. 지난주 송 과장 가족들이 서울의 패션지구 명동에서 쇼핑을 하다 인근의 롯데시네마 영화관에 들른 것이 화근이다. 성철이가 영화관의 안내 로봇 ‘시로미’에게 홀딱 반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로봇은 매표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관람객들에게 새 영화와 이벤트에 관한 정보를 전달한다.

롯데시네마는 지난해 12월 로봇 개발업체인 이디로부터 시로미를 사들여 명동 애비뉴엘관, 영등포관, 건대입구관에 배치했다. 깜찍한 외모로 특히 어린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라는 평가다. 시로미에게 달려드는 어린이들이 워낙 많아 팔과 회로가 몇 번씩 고장 났다. 시로미의 대당 가격은 5000만원. 아들 바람대로 시로미를 사들이려면 전세금을 빼야 한다.

송 과장은 점심을 먹고 성철이와 함께 백화점에 갔다. 로봇 대신 장난감으로 아들을 달래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완구 코너에서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도 로봇이다. ‘제니보’라는 로봇강아지로 주인이 부르면 달려오고, 부르지 않으면 이리저리 혼자 돌아다닌다. 쓰다듬어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졸거나 오줌 누는 시늉도 한다. 하는 짓이 실제 강아지와 똑같다. 그러나 가격이 150만원으로 장난감치곤 무척 비싸다. 같은 돈이면 진돗개 다섯 마리를 살 수 있다. 송 과장은 제니보를 사달라고 생떼를 쓰는 아들에게 대형 레고블록 세트를 사주고서야 겨우 완구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국내 로봇 인공관절 수술 벌써 7000여 건 달해

사실 성철이는 아빠보다 더 로봇에 익숙하다. 유치원에서 매일 로봇 선생님과 함께 놀기 때문이다. 성철이네 유치원이 도입한 교육용 로봇 ‘아이로비Q’는 높이가 45㎝밖에 되지 않아 꼭 장난감처럼 생겼다.그러나 아이들에게 동요를 불러주고 춤도 가르쳐 주며 동화책을 읽어 주는 데 크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몸에 붙은 스크린으로 노랫말과 춤동작, 동화 영상을 표시해 아이들의 이해를 돕는다.

1. 인공관절 수술 로봇 ‘로보닥’. 의료진이 짜둔 시나리오에 따라 전자동으로 수술을 진행한다. 2. 간호보조 로봇 ‘파이로’. 홀로 병실을 돌아다니며 환자들의 상태를 체크한다.
송 과장도 아들의 유치원에 방문했을 때 아이로비Q를 몇 번 봤다. 원장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150여 곳의 유치원이 아이로비Q를 도입했다고 한다. 정부도 로봇을 활용한 교육에 관심이 많아 올해 800여 곳의 유치원에 교육 로봇을 보급할 계획이라는 설명이다.  

송 과장은 오후 늦게 가족들과 함께 서울 동대문구의 경희의료원을 방문했다. 송 과장의 아버지가 이곳에 입원해 있기 때문이다. 송 과장의 아버지는 한 달 전 계단에서 굴러 고관절(골반과 대퇴골을 잇는 부분)을 심하게 다쳤다. 사고 직후 의사는 기존 연골을 제거하고 인공관절을 삽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골반과 대퇴골에 홈을 낸 후 임플란트식으로 인공관절을 박아야 하는 대수술이라고 덧붙였다.   

송 과장은 의사를 통해 최근엔 로봇이 수술도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로보닥’이라는 인공관절 수술 로봇이 직접 환자들을 다룬다는 것이다. 의료진이 미리 짜둔 수술 시나리오에 따라 환부를 자르고 뼈를 깎는 작업을 진행한단다. 의사는 로봇수술의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어 있는 만큼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국내에선 2008년 이후 7개 병원이 로보닥을 도입해 올해 초까지 7000여 건의 로봇수술이 이뤄졌다고 한다.

병원들이 로봇수술을 선호하게 된 것은 정밀한 수술이 가능해 오차율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관절 수술에서 의사가 직접 뼈를 깎을 경우 2~3㎜가량의 오차가 발생할 수 있지만 로보닥은 이를 0.05㎜까지 줄인다. 평균 15~20%였던 재수술율도 1%대로 내려간다. 환자의 회복 속도도 빨라 송 과장의 아버지는 수술 이틀 만에 혼자 걸을 수 있게 됐다. 지금은 거의 완쾌돼 곧 퇴원할 예정이다. 

아내가 아버지에게 사과를 깎아드리는 동안 송 과장에게 전화가 왔다. 대구시 수성구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친구 강명근(41·가명) 소방장이다. 송 과장 아버지가 퇴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축하도 할 겸 안부를 묻는 전화다. 송 과장은 문득 강 소방장이 사고로 입원했을 때가 떠올랐다. 강 소방장은 2년 전, 화재 진압 중 유독가스를 마셔 사경을 헤맨 적이 있다. 당시 송 과장은 그 소식을 듣고 회사에 조퇴계를 낸 후 한 달음에 대구로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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