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앞둔 고3수험생의 모친 살해사건

    입력 : 2012.01.05 08:40

    고3 아들이 수능을 앞두고 어머니를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아들에게 전국 1등을 강요했다던 어머니는 사건이 일어난 지 8개월이 지나서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뉴스를 통해 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1등만 강요했던 빗나간 모정과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이성을 잃은 아들이 빚어낸 비극적인 결말이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기자가 직접 찾아간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한 다세대 주택은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난 곳이라고는 느낄 수 없을 만큼 평범한 곳이었다. 회색 외벽의 네모반듯한 건물 안에는 총 16세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짐작건대 아빠, 엄마, 아이들의 행복한 보금자리가 있었을 그곳. 그곳에 모자(母子)의 집도 있었다. 5년 전 아버지가 집을 나가버린 뒤 모자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사건은 2011년 3월 20일 오전 11시쯤 일어났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아들 지 모 군(18)은 부엌에서 흉기를 꺼내 안방에서 자고 있던 어머니 박 모 씨(51)를 무참히 살해한 뒤 8개월간 방치했다. 지 군은 경찰 조사에서 “한 번에 끝낼 생각으로 엄마의 얼굴에 흉기를 휘둘렀다. 깜짝 놀란 엄마는 새빨간 선혈을 흘리며 ‘이러면 너 정상적으로 못 산다’는 말을 계속했고 당황한 나머지 ‘엄마는 몰라. 엄마는 내일 나를 죽일 거야!’라고 울부짖으며 있는 힘껏 엄마의 목을 졸랐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모자는 한동안 격렬한 실랑이를 벌였고, 지 군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흉기를 주워 기진맥진한 상태의 어머니에게 다시 한 번 칼을 휘둘렀다. 

    지 군은 사건 동기에 대해 “내일모레가 학부모 방문의 날이었는데, 전국 모의고사 성적표에서 4000등을 62등으로 고쳐놓았던 게 들통 나면 어머니께 구타를 당할 것 같아 두려워서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건 발생) 이틀 전부터 ‘전국 62등이 뭐냐’며 어머니에게 야구방망이와 골프채로 왼쪽 엉덩이를 맞았고, 잠도 자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광진경찰서. 지 군은 아버지 입회 하에 면회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8개월간 아무도 몰랐다
    사건이 일어난 후 지 군은 어머니의 사체를 안방에 그대로 방치한 채 집에서 계속 생활했다. 어머니의 근황을 묻는 사람에게는 “어머니가 가출을 했다”고 둘러댔으며, 6월경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아버지 지 모 씨(52)에게도 “엄마가 외국에 갔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지난 4월 13일 협의이혼을 하기로 한 어머니가 법정에 나타나지 않은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조취를 취하지 않았다. 이 같은 지 군의 행동에 대해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교수는 “범행 이후 무의식적으로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수 있지만 어머니에게서 풀려난 해방감이 더 컸기 때문에 정상 생활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 군은 ‘그날’ 이후 어머니가 나타나는 꿈을 자주 꿔 괴롭다고 말했다. 성적은 곤두박질 쳤고 학교에 무단결석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담임교사는 지 군이 1학기 중간고사 시험을 보지 않아 이상하게 여겼지만, 이런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3월에 가정방문차 지 군의 집을 방문했다는 담임교사는 “그때 이런 정황을 눈치를 챘더라면 지 군이 8개월이나 지옥같이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군은 대담했다. 시신이 부패하기 시작하자 냄새가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도록 안방 문틈을 공업용 본드로 밀폐시켜버리고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라면을 끓여먹었다고 한다. 악몽 같던 8개월 동안 여자친구까지 사귀었는데,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주기를 바랐던 듯 과도한 집착을 보였다고 한다. 지 군은 여자친구에게 “네가 나를 안 만나주면 네 앞에서 죽어버리겠다”는 섬뜩한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 군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제일 먼저 알아챈 사람은 아버지였다. 1년 만에 집에 들렀던 그는 아들이 필사적으로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데다 안방 문틈에 본드가 칠해져 있는 점을 수상하게 생각해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엄마 안에 있니?”라는 그의 물음에 지 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광진경찰서 강력계 팀장은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집이 고물상을 연상시킬 정도로 어수선하고 지저분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보기엔 정도가 너무 심했죠. 아버지의 신고를 받고 도착했던 저희 팀은 안방 문에 발린 본드를 보고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습니다. 문을 열자 심한 악취가 진동했고, 시신은 반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상태였죠.”

    경찰이 방문을 열던 바로 그때 지 군은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아빠, 무슨 일이 있어도 나 안 버릴 거지?”라며 흐느꼈다고 한다. 아버지마저 잃고 싶지 않다며 벌벌 떠는 지 군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고.

    이후 경찰조사에서 지 군은 “나 잘되라고 그랬던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한다”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차례 했지만 뻔뻔하게 살아 있다”고 뒤늦은 자책을 했다고 한다.

    모자가 거주했던 구의동 다세대 주택. 베란다와 창문을 살짝 열어뒀다.

    비뚤어진 모정이 부른 참극
    지 군의 진술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 박 씨는 “서울대 법대를 가라. 전국 1등을 해야 한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다”라는 말을 늘 달고 살았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지 군의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밥을 굶기거나 잠을 못 자게 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교육방식을 고수했다고 한다. 강박적으로 성적에 집착하던 박 씨는 지 군이 초등학교 3학년일 때도 책상에서 밥을 먹여가며 16시간 동안 공부를 시켰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토익 점수가 이미 900점이 넘었다는 사실만 봐도 지 군의 공부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한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박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들만 위하는 아버지 밑에서 우울한 성장기를 보냈다고 한다. 서울 소재 대학의 일본어학과를 졸업하고 결혼했지만, 남편과 불화가 계속되었다. 결국 부부 사이는 점점 멀어졌고 밖으로 나돌던 남편과는 5년 전부터 별거에 들어갔다. 지 군의 아버지는 이미 새 가족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자 지 군의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집착이 점점 심해졌다. 담당 형사의 말에 따르면 집에 방이 세 개나 있음에도 아들의 방을 따로 내주지 않고 거실에 책상을 두거나 안방에서 함께 잠을 자는 방식으로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고 한다. 자전거로 등하교를 하는 아들이 예정된 귀가시간을 단 몇 분이라도 넘기면 그때부터 계속해서 전화를 하기도 했다고.

    아들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폭언도 문제였지만, 특히 체벌은 문제가 심각했다. 지 군의 아버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곱 살 때부터 아들을 교육한다며 매를 들었다. 여름에 긴 바지를 입고 있길래 봤더니 종아리와 엉덩이에 피멍이 맺혀 있어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아들이 어릴 때부터 체벌을 가했던 박 씨는 지 군이 고등학생이 되자 야구방망이와 골프채까지 휘둘렸다.

    정황은 이러하나 그녀는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어머니였다. 집 안에 변변한 가구 하나 들여놓지 않을 정도로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아버지가 보내오는 생활비 120만 원 중 절반을 지 군의 대학 등록금으로 모으고 있었다고 한다.

    지 군이 다녔던 광진구 소재 모 고등학교. 지 군은 원만한 교우관계를 유지했으며 성적도 상위권이었다.

    지 군에 대한 의혹의 시선
    이번 사건은 어머니의 과도한 집착이 빚어낸 비극으로 정리되는 듯하다. 그러나 지 군의 진술 외에 확실한 정황증거가 없는 상황인 만큼 의혹은 남아 있다.

    지 군의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의심할 수 있는 요소로 그의 폭력성이 거론되는데 경찰이 모자의 집 안을 확인한 결과 방문에는 직경 40㎝가량의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었다. 이는 방문을 향해 비비탄을 쏘고 칼을 던져 생긴 자국으로, 지 군은 어머니를 살해한 후 아버지에게 받은 생활비로 일본도 칼과 서바이벌 게임용 총을 구입한 것이었다. 어머니를 살해한 뒤 시신을 안방에 그대로 방치한 채 8개월 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집에서 생활한 점도 정상적인 행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또 전국 4000등인 성적표를 전국 67등으로 고쳤다는 진술에도 신빙성이 떨어진다. 지 군은 고2때 반에서 10등 밖으로 성적이 떨어진 상태였고, 사실상 전국 4000등 안에 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등수까지 거론해가며 거짓말을 한 점은 자신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합리화하고자 둘러댄 말이 아니었을까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지난 11월 25일 지 군의 현장검증이 실시됐다. 푸른색 외투에 마스크를 착용한 채 나타난 지 군은 담담한 표정으로 당시의 상황을 재연했다. 현장에 있던 담당 형사는 지 군이 “반성은 하고 있지만, 이미 8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인지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 점점 망각해가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아버지 입회 하에 녹화실에서 조사를 받았던 지 군은 존속살해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 송취된 상태이며 프로파일러를 통해 심리상태도 분석받을 예정이다.

    한편 지 군의 아버지는 어머니 박 씨의 지나친 폭력성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만큼 지 군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지 군의 고모는 그가 어머니를 살해하고도 태연히 수능을 치렀다는 대중의 비난에 대해 “학교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애가 수험표를 안 찾아간다’고 전화했고, 아버지가 수능시험만은 꼭 봐야 한다고 화를 내서 시험을 본 거지 뻔뻔하게 엄마 죽이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시험을 보러 간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성적 때문에 벌어진 비극적인 가족 사건
    2010년 10월 21일 오전 3시 35분쯤 서울 하왕십리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중학교 2학년 이 모 군(13)이 식구들이 잠자는 사이 집 안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 화재로 이 군의 아버지(48)와 어머니 최 모 씨(39), 동생(11), 할머니 박 모 씨(74) 일가족 4명이 숨졌다. 이 군은 예술고에 진학하려는 자신의 희망과 달리 판·검사가 되라고 몰아붙이는 아버지 때문에 홧김에 방화를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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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 장혜정 기자ㅣ사진 이준경,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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