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경기 부양과 인구 감소로 집값 폭락한 일본

      입력 : 2013.11.01 08:00

      해외 사례 집중 탐구
      미국·유럽, 경기부양→부동산 거품 양산→거품 붕괴→경기 침체

      국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경제 구조가 달라 일률적으로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사회가 고령화되고 경기 성장률이 둔화되면 어김없이 집값은 하강 곡선을 그렸다. 문제는 하락 속도다. 정부나 다수의 연구기관들이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바로 ‘집값 경착륙’이다. 금융시장과 투기 심리가 함께 만든 집값 거품이 한순간 꺼지게 될 경우 이는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해외 주요 국가들의 집값 하락 원인을 짚어봤다. 

      국내 부동산 시장의 해법을 다른 나라 사례에서 찾는 것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무엇보다 현재 상황을 설명해줄 만큼 정확하게 우리와 100% 일치하는 사례가 없다. 우리처럼 단시간 내 대량으로 공급된 경우도 많지 않을뿐더러, 단기 고도성장으로 수요가 급증한 사례 역시 흔치 않다. 우리보다 10년 먼저 베이비붐 세대가 등장한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도 짧은 시간 수요가 늘었지만 우리처럼 단기간 다량으로 집을 공급하지 않았다. 여기에 우리나라에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임대차 구조인 전세가 100년 넘게 자리 잡아 왔다. 우리와 달리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은 임대차 시장의 기본은 월세다. 1년치를 통째로 내는 식의 연세(年貰)도 있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매주 내는 주세(週貰)와 매달 내는 월세(月貰)다.

      도쿄를 비롯해 일본 부동산 시장 전체는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를 정도로 장기 침체를 겪고 있다
      도쿄를 비롯해 일본 부동산 시장 전체는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를 정도로 장기 침체를 겪고 있다.
      주택 시장의 기본 구조는 다르지만 전체적인 사회·경제 구조가 선진국형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찾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선진국형 사회 구조란 경기 성장률이 둔화되는 가운데 주택 소유욕이 적고, 인구 구조가 고령화된 사회를 의미한다. 특히 미국, 유럽 국가들이 베이비붐 세대들이 대거 은퇴에 나서면서 인구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은 우리 주택정책당국이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 중개업소의 주택 임대·매매 광고가 내걸린 일본 도쿄 거리를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소의 주택 임대·매매 광고가 내걸린 일본 도쿄 거리를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일본 집값 거품 ‘잃어버린 20년’ 단초

      현재로선 우리보다 집값 변동 주기가 5~10년 정도 빠른 일본 부동산 시장이 여러 면에서 시사점을 주는 바가 크다. 일본은 부동산에서 촉발된 금융위기가 경제·산업 전반에 치명타를 주면서 장기 침체의 단초가 됐다. 정부의 산업·경기 부양책으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집값이 뛰기 시작했고 여기에 투기 수요가 가세하면서 경제성장률을 뛰어넘는 가격 거품이 형성된 것이 우리와 닮은 모습이다. 

      일본 부동산 값이 오르기 시작한 것은 1947년 발족된 다나카 내각이 일본열도개조론이라는 국토개발 구상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여기에 1950~1960년대 경기가 살아나고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늘면서 공업용지와 상업용지 수요가 확대됐다. 이는 자연스럽게 민간주택에 대한 수요를 늘리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1차 거품은 1973년 제1차 오일 쇼크를 계기로 꺼졌다.

      거품 붕괴 뒤 처참한 결과만이 기다리는 것은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똑같이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리고 가격 붕괴는 각국 정부로 하여금 경기 부양책이라는 카드를 사용하게 만들었다. 일본 정부 역시 비슷한 정책을 폈다. 일본 정부가 1차 오일쇼크의 충격에서 헤어나기 위해 경기 부양책을 단행한 결과 일본은 1980년대에는 미국 다음의 강력한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오일쇼크는 일본에게는 호재로 작용했지만 미국에게는 심각한 재정적자로 이어졌다. 1985년 미국이 일본의 인위적인 외환시장 개입을 비판하면서 플라자합의를 통해 엔·달러 환율을 달러당 250엔에서 150엔대로 강제로 조정한 것이 문제가 된 것. 이듬해부터 일본 정부가 엔고 불황에 빠진 기업을 살리기 위해 대규모 경기부양에 나서는가 하면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1987년 초까지 기준금리를 5%에서 2.5%로 낮췄다. 저금리로 인해 표면적으로 경기는 살아나는가 싶었지만 일본에게 기다리고 있던 것은 거대한 부동산 거품뿐이었다. 부동산에 낀 거품이 심각하다는 걸 안 일본은행은 1989년 말 4.25%였던 기준금리를 이듬해 여름 6%까지 끌어올렸다. 그러자 전체 부동산 시장이 타격을 입었으며 특히 상업용 부동산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정책 당국의 ‘갈팡질팡식’ 경제 운용 정책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부동산 투기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경제가 동반 추락하자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1995년 0.5%까지 낮추는 초저금리 정책을 실시했다. 1999년부터는 사실상 0%로 하는 제로금리 정책을 시행했지만 일본 경제는 소폭 상승했다고 말하는 2000년대 중반 몇 년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장기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내 집값에 거품이 끼어 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지금의 부동산 사정이 일본 경제의 거품 붕괴 직전의 모습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고 말한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은 지난 2009년 펴낸 <위험한 경제학>에서 △버블 붕괴 직전 일본이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3대 도시권을 중심으로 진행된 것 △가격 하락 직전인 1999년 일본 주택보급률이 111%였다는 점 △주수요층인 35~54세 인구가 1990년 3860만명에서 정점에 도달한 후 빠르게 줄어든 것 △가격 버블이 꺼지고 있는 1987~1990년 사이 일본 정부가 연간 170만가구 가량을 공급하는 등 꾸준하게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폈다는 점이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조지아주 스미르나지역에 있는 은행 압류 주택 앞에 할인 매각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미국 조지아주 스미르나지역에 있는 은행 압류 주택 앞에 할인 매각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원인은 부동산 거품

      경제학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가격 거품이 끼기 시작한다는 것은 개인들의 자산 축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안전자산인 저축에 대한 매력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땅값 상승에 따른 부동산 경기 붐이 투자 위험도를 낮추는 효과로 이이져 대규모 대출로 나타난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일본의 경우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하락은 주전(주택전문금융회사)의 붕괴를 가져와 전체 금융시장의 부실을 초래했으며 이는 심각한 소비 감소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땅값, 인건비는 제품의 경쟁력과 직결돼 있는데 일본 기업들이 일본 내 산업 생산시설을 동남아, 중국으로 이전시키기 시작한 것도 부동산 가격 거품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산업 공동화(空洞化)를 우려하는 우리 산업계에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경제 구조가 점차 복잡하고 정교해지면서 부동산 가격 거품 붕괴 피해는 단순히 해당 시장에만 그치지 않는다. 가격 거품 붕괴를 경험한 주요 선진국들은 경착륙 피해가 금융시장까지 초토화시키는 문제를 양산해냈다.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의 단초를 만든 태국도 1980년대 연평균 실질 경제성장률이 8.4%에 달할 정도로 고속성장을 기록하면서 주택, 오피스 공급이 급증했다. 1995년 오피스 시장이 공급 과잉으로 치달으면서 태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억제와 바트화 방어의 목적으로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그 결과 태국 부동산 시장 거품은 붕괴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경제성장률 둔화가 이어지면서 주식 등 주요 시장이 동반 붕괴되는 양상을 보였다.

      미국도 아직까지 완벽하게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기 침체의 출발은 부동산에서 비롯됐다. 2008년 세계 경제 전체를 나락으로 이끈 서브프라임모기지는 부동산 대출 상품의 한 종류다. 소유자 사회(Ownership Society) 건설을 기치로 내건 미국 부시 정부는 다양한 주택 구입 지원책을 펼쳤으며 이와 동시에 금리를 2001년 6.5%에서 2006년 1.25%까지 낮췄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주택 구입 시 구매력을 철저하게 따져 금융권이 대출에 나섰는데, 부동산 경기에 대한 전망이 좋아 모기지대출 회사들이 마구잡이로 대출에 나선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2001~2005년 당시 미국 집값 상승률은 연평균 15.9%에 달했다. 문제는 신용등급이 낮은 노동자, 빈민, 흑인들에게까지 대출이 이뤄졌다는 데 있다. 여기에 미국 월가의 첨단금융기법이 동원돼 모기지대출 담보채권을 자산유동화증권(MBS)으로 유동화시킨 뒤 여기에 부채담보부증권(CDO)을 결합한 파생상품은 신용경색의 불씨를 만들었다. 그 결과 부동산 가격 폭등은 엄청난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져 1974년 6800억달러에 불과했던 미국의 가계부채는 2008년 미국 전체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14조달러까지 불어났다.

      연도별 일본 공시지가 변동률
      연도별 일본 공시지가 변동률
      ‘경기부양→부동산 거품 양산→거품 붕괴→경기 침체’라는 순환 사이클은 최근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유로존(유로 통화를 사용하는 유럽 국가)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한때 유럽 금융의 중심을 꿈꿨던 아일랜드는 재정위기의 상당 부분을 부동산 관련 대규모 부실채권이 차지하고 있다. 현재 아일랜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값 거품이 붕괴되면서 상당수 은행들이 파산했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지난 2011년 펴낸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미래>에서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의 말을 인용해 “아일랜드 주택시장에 거품이 발생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당시 유럽 최대 무역 흑자국인 독일의 외화유동성이 2000년 이후 대거 유입되면서 가격 거품을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아일랜드의 사례에서 외부 투기 수요는 독일의 유동성이며 그 피해는 아일랜드를 비롯해 유로존 전체가 고스란히 안고 있는 것이다.


      / 이코노미조선
        송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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