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개 계단에서 열리는 '계단장터' 아시나요

      입력 : 2013.11.12 08:00

      한남동 마을공동체 '우사단단'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사원 앞 내리막길을 따라 형성된 우사단 마을은 재개발이 묶여 1970~1980년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이곳에 젊은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즐거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마을 친목 모임으로 시작해 벼룩시장 개최, 마을신문 발행, 동네 투어 프로그램 개발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우사단단' 회원들을 만났다.

      마치고 한자리에 모인 우사단단 회원들.
      마치고 한자리에 모인 우사단단 회원들. 왼쪽부터 김금식, 김연석, 오단, 권효윤, 이정민, 장재민, 이영동, 이성용, 이세형씨.
      ■예술가, 건축가들이 월 1회 계단 장터 열어

      지난 10월 26일 정오, 한남동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이슬람사원) 앞 계단에서 올해 마지막 '우사단 계단장(계단에서 열리는 장이라는 뜻)'이 열렸다. 60여 개 계단은 젊은 셀러(판매자)들이 집에서 만들어 온 향초·쿠키·잼·액세서리 등과 겨울용 중고 의류를 판매하는 장터로 변신했다. 학생·예술가·회사원 등으로 구성된 셀러들의 취향도 제각각이다.

      본격적으로 장이 서자 오전부터 마을 청소, 자리 배치 등으로 분주했던 우사단단 회원들이 계단 앞 커피숍에 모였다. "우리는 장터가 열리기 직전이 제일 바빠요." 운을 뗀 사람은 이슬람사원 앞에서 테이블 하나 의자 여섯 개가 전부인 '사원앞카페벗'을 운영하는 오단(25)씨.

      '우사단 마을'은 이슬람사원에서 도깨비 재래시장을 거쳐 한강 방면으로 난 내리막길을 따라 형성된 산동네다. '우사단 10길'로 불리는 이 길은 한남동, 보광동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고급 식당이 늘어선 이태원 중심가와 달리 크고 작은 케밥집과 아랍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최근 이태원 중심과 가깝고 임대료가 싸다는 장점으로 젊은 예술가들이 작업실, 공방을 속속 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가을 사원앞카페벗을 동네사랑방 삼아 모이던 예술가, 건축가 등 끼 넘치는 주민 20여 명이 아예 마을 이름을 딴 모임 '우사단단'을 결성했다. 이들의 첫 번째 프로젝트가 바로 계단장. 처음에는 셀러를 구하느라 애먹을 정도였는데 계단장의 인기가 알음알음 알려져 이제는 지방에서 KTX를 타고 일부러 찾아오는 열성 방문객도 있다고 오단씨는 전한다.

      ■어르신에게 고증받아 동네 투어 프로그램

      우사단단 회원들은 지난 가을부터 매주 화요일에 꾸준히 기획 회의를 열어 마을을 무대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계단장은 물론, 매월 우사단 마을신문 제작, 마을 페이스북(facebook.com/wosadan) 운영, 동네 투어 등의 기획이 차례로 자리 잡았다. 우사단 계단장에서 '10초 만에 초상화를 그려주는 이벤트'를 진행해서 인기를 끌고 있는 장재민(30) 작가는 '우사단 마을신문'의 디자인을 맡고 있다. 신문에는 세탁소 강아지의 식성부터 주민들의 일상 이야기가 시시콜콜 담기지만, 새로 오픈한 가게와 월세 매물 정보도 깨알같이 실려 있다. 우사단 마을에 작업실을 두고 활동하는 20, 30대 작가들뿐 아니라 오랜 주민들도 이러한 마을의 변화를 두 팔 벌려 환영한다고. 지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인 이영동(27)씨가 지난 3월부터 진행하는 동네 투어 프로그램인 '동동투어'는 동네 어르신들의 고증을 받아 코스를 짰다. 이씨는 "찜질방인 이태원랜드는 1980년까지 영화배우 신성일씨가 운영하던 태평극장이었다는 것, 이슬람사원은 1970년 석유공급원인 이슬람 국가와의 우호관계를 위해 지어진 것 등의 사실을 설명하면 다들 신기해한다"라고 말한다. 주요 명소와 함께 우사단 마을에 있는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동동투어가 소문나면서 외국인, 학생, 건축가협회 회원 등 다양한 방문객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우사단단 회원들은 11월 말까지 마을 곳곳에 어르신들이 앉을 의자를 만들어 설치할 계획으로 요즘 한층 더 분주하다. "계단장 서던 날 '한동네서 오랫동안 살았어도 요즘처럼 마을이 활기찬 적이 없었다'고 눈물을 글썽인 어르신도 계셨는데 의자를 보시면 깜짝 놀라시겠죠?" 계단장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만난 김연석(32)씨의 말이다.


      글= 서지혜 리포터 ㅣ 사진= 조혜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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