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팬’ 등에 업은 걸그룹의 생존경제학

      입력 : 2013.12.13 08:00 | 수정 : 2013.12.24 16:30

      이제 한국 가요계에 ‘삼촌팬’이라는 말은 흔한 용어가 됐다. 삼촌팬의 연령층을 명확하게 규정하긴 힘들지만, 가요계에서는 대략 1970년에서 1980년 사이에 태어나고 1980년대에 청소년기를, 1990년대에 대학교에 다닌 연령층을 일컫는다. 30대 중반~40대 중반 가량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다. 이 삼촌팬을 탄생시킨 배경에는 ‘걸그룹’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에는 적지 않은 30~40대의 남성들이 걸그룹에 열광하고 그들의 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고, 춤까지 따라 추기도 한다. 몸치이건 박치이건 상관없다. 그저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삼촌팬’ 등에 업은  걸그룹의 생존경제학

      이들이 열광하는 걸그룹의 역사는 이미 수십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걸그룹이라는 명칭이 생겨나고 걸그룹을 비롯한 아이돌이 가요계를 장악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다. 핑클과 SES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걸그룹의 전성시대가 시작됐고 소녀시대, 투애니원(2NE1), 미쓰에이(Miss A), 그리고 최근의 크레용팝에 이르기까지 수백여개의 걸그룹이 탄생해 인기를 얻고 그중 대다수는 잊혀지기도 했다.

      수많은 걸그룹들이 난무하는 요즈음, 걸그룹들의 생존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걸그룹의 변천사 및 인기 요인,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생존경제학을 들여다보았다. 

      지난 1953년 걸그룹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김시스터즈 이래 최근의 크레용팝까지, 수많은 걸그룹들이 한국 가요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 왔다.

      각 걸그룹들은 저마다의 개성과 색깔, 음악성으로 승부했고 이제 걸그룹이 없는 가요계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세대별로 어떤 걸그룹들이 탄생하고 활약했는지 그 변천사와 현황을 살펴본다. 

      ‘삼촌팬’ 등에 업은  걸그룹의 생존경제학
      미쓰에이의 데뷔곡 ‘배드 걸 굿 걸(Bad Girl Good Girl)’은 데뷔 첫해 3관왕을 수상했다.

      걸그룹이 탄생한 것은 지난 195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요계에서는 1953년 데뷔한 김시스터즈를 여성멤버 여러 명으로 구성된 걸그룹의 효시로 보고 있다. 김시스터즈는 해외 활동이 어려웠던 당시에도 주한미군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미국 라스베이거스까지 진출했고, 미국 여러 지역에서 공연을 펼치며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1962년 아시아 가수로는 처음으로 빌보드 메인차트 6위에 오르는 역사를 남기기도 했다. 그래서 김시스터즈를 ‘한류’의 시초라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걸그룹의 활동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후반 들어서다. SES와 핑클이 각각 1997년과 1998년 잇달아 데뷔하면서 1세대 걸그룹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두 그룹은 서로 경쟁을 펼치면서 상승효과를 얻었다. SM엔터테인먼트에 의해 철저하게 기획돼 탄생했던 SES는 데뷔곡이었던 ‘I’m Your Girl’이 가요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요정의 이미지를 내세우며 등장했던 SES는 이후 ‘Oh, My Girl’이 연이어 히트했고, 2집의 ‘Dreams Come True’·‘너를 사랑해’, 3집의 ‘Love’까지 줄줄이 인기를 끌었다. 일본과 대만에서도 활동했던 SES는 SM엔터테인먼트의 해외활동 교두보를 마련하는 시초가 되기도 했다.

      SES에 이어 데뷔한 핑클은 1세대 걸그룹의 양대산맥 중 하나다. 핑클을 만든 대성기획(DSP엔터테인먼트)은 SM엔터테인먼트가 H.O.T를 내놓자 젝스키스를 결성해 보이그룹과 걸그룹 모두에서 SM엔터테인먼트와 경쟁했다. 핑클은 철저한 트레이닝을 통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메인보컬 옥주현의 가창력과 이효리, 성유리의 외모로 승부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데뷔곡 ‘Blue Rain’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으나, 이어 발표한 ‘내 남자 친구에게’, ‘루비’가 히트하며 SES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베이비복스, 디바 등 여성스러움 대신 강인함으로 승부
      두 그룹은 확연하게 다른 색깔로 승부했다. SES가 신비로운 이미지를 내세웠다면 핑클은 대중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SES가 해외활동에 주력하는 동안 핑클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국내 활동을 넓혀갔다는 점도 달랐다. 이들 두 그룹 멤버들은 지금도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걸그룹의 ‘미래’에 대한 길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삼촌팬’ 등에 업은  걸그룹의 생존경제학
      씨스타는 걸그룹이 흔히 내세우는 콘셉트이기 때문에 차별화가 어려운 섹시 콘셉트를 ‘드러내놓고’ 전면에 내세워 성공했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베이비복스와 디바는 SES·핑클과는 다른 ‘강한 여성’의 캐릭터를 내세웠다. SES·핑클 수준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뚜렷한 개성으로 강력한 팬층을 형성했다. 디바는 여성스러운 옷 대신 힙합 패션처럼 개성 있는 복장으로 강인한 이미지를 만들었고, ‘그래’·‘왜 불러’ 등 음악에도 이러한 느낌을 반영했다. 베이비복스 역시 강한 이미지에 섹시함을 더한 ‘Get Up’, ‘Killer’와 같은 곡이 큰 인기를 얻었다.

      2000년대 하반기 들어 탄생한 2세대 걸그룹은 ‘걸그룹 전성시대’를 이끈 주인공들이다. 이 시기에 들어 탄생한 걸그룹 수만 해도 어림잡아 100개 그룹이 넘어갈 정도로 수많은 걸그룹들이 춘추전국시대를 만들었다. 이들은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선두주자에 속하기도 한다.

      그중 가장 앞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그룹은 ‘걸그룹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소녀시대다. 2007년 8월 싱글앨범 곡 ‘다시 만난 세계(Into the New world)’로 데뷔한 소녀시대의 첫 번째 히트곡은 그 해 11월 발매된 정규1집에 담긴 ‘소녀시대’였다.

      이승철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노래이자 그룹명과도 동일했던 이 노래로 소녀시대는 ‘지금은 소녀시대’라는 그룹의 캐치프레이즈처럼 가요계를 평정해 갔다. 김은아 SM엔터테인먼트 홍보팀장은 “소녀시대의 정체성은 그룹명에 그대로 담겨 있다. 9명의 소녀들이 데뷔 때부터 그 나이에 어울리는 ‘소녀’의 모습을 표현하고, ‘대중이 원하는 소녀들의 모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자는 키워드”라고 설명했다.

      소녀시대의 히트곡들에 담긴 메시지 또한 이러한 ‘소녀시대의 성장사’가 담겨 있다고 한다. 소녀들의 감수성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노래한 소녀시대의 곡들은 10대와 20대는 물론 30~40대 삼촌팬들의 마음까지 자극했다. 소녀시대의 열혈팬이라는 한 40대 남성은 “소녀시대를 알기 전까지 가요에 관심도 없었고 가수 이름도 거의 몰랐다. 내 인생은 소시(소녀시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녀시대는 ‘걸그룹 중의 갑(甲)’, ‘걸그룹의 아이콘’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으로 불릴 만큼 걸그룹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소녀시대의 경제효과에 대해 ‘10조원+α’로 분석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 대다수 걸그룹들이 투자 금액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이지만, 소녀시대는 예외다.

      소녀시대와 함께 2세대 걸그룹을 이끌었던 주자는 원더걸스다. 2007년 데뷔한 원더걸스는 ‘Tell Me’와 ‘Nobody’의 성공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Nobody’는 1950년대 미국 흑인음악의 주류였던 모타운풍의 섹시 콘셉트로 미국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전미 투어를 다니며 토크쇼에 출연하는 등 원더걸스의 시도 자체가 한국 아이돌 팝의 글로벌한 시장성을 확인하는 잣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다국적 멤버로 구성된 걸그룹 등장
      2010년 데뷔한 미쓰에이(Miss A)는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대표가 내놓은 두 번째 걸그룹이다. 미쓰에이의 데뷔곡 ‘배드 걸 굿 걸(Bad Girl Good Girl)’은 데뷔 첫해 신인상, 음원상 등 3관왕을 수상했다. 또 발매 2주 만에 음원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1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삼촌팬’ 등에 업은  걸그룹의 생존경제학

      한국인 민과 수지, 중국인 페이와 지아로 구성된 미쓰에이는 철저하게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걸그룹이다. 원더걸스가 미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었다면 미쓰에이는 중국을 포함한 대만, 필리핀 등 아시아 시장 진출을 노린 전략적 그룹이었던 셈. 황준민 JYP엔터테인먼트 홍보팀장은 “새 앨범을 내놓을 때마다 한국 활동이 끝나면 바로 중국 활동을 이어서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시기(2009년)에 데뷔한 SM엔터테인먼트의 에프엑스(f(x)) 또한 한국, 중국, 미국의 3개국 출신으로 구성한 다국적 걸그룹이었다. 같은 기획사의 소녀시대처럼 에프엑스도 해외시장을 겨냥한 팀이었지만, 소녀시대와는 확연하게 다른 이미지를 내세웠다. 김은아 팀장은 “여타의 걸그룹들이 저마다 섹시 콘셉트로 경쟁을 벌이고 있던 상황에 에프엑스는 노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개성 강한 음악으로 승부했다”고 설명했다.

      2009년 디지털 싱글 앨범 ‘Lollipop’으로 데뷔한 투애니원(2NE1)은 2세대 걸그룹 중 가장 확실한 색깔을 보여주는 팀이다. 일부 가요평론가들은 “국내 걸그룹은 소녀시대와 투애니원으로 대표된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황민희 YG엔터테인먼트 홍보팀 과장은 “투애니원은 예쁘고 여성스러운 걸그룹이 아닌 당당하고 독립적인 걸그룹을 표방한 팀이다. 멤버 전원이 보컬리스트로서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데다 씨엘(CL)은 랩, 공민지는 춤에 독보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쓰에이에 이어 애프터스쿨, 포미닛, 씨스타 등도 2009~2010년 무렵 데뷔한 2세대 걸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2000년대 하반기 수많은 걸그룹들이 등장해 걸그룹 전성시대를 이어갔다.

      ‘삼촌팬’ 등에 업은  걸그룹의 생존경제학
      1. 1990년대 후반의 1세대 걸그룹 핑클 2. 2007년에 데뷔한 원더걸스는 미국시장에 진출해 걸그룹의 해외 시장 활동을 개척해 갔다.

      걸그룹이 흔히 내세우는 콘셉트이기 때문에 차별화가 어려운 섹시 콘셉트를 ‘드러내놓고’ 전면에 내세운 씨스타(SISTAR)의 행보도 눈에 띈다. 서현주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이사는 “씨스타가 가진 매력을 대중에게 보다 빨리, 정확히 인지시킨 점이 주효했다고 본다. 멤버가 구성되었을 때 대중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건강한 섹시미’였는데 매 앨범마다 이러한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건강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앨범 프로모션시 예능 프로그램에서 ‘운동’이라는 특기를 잘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가 하면, ‘섹시코드’를 최대한 살리는 의상과 안무를 택하는 방식이다. 섹시함을 전면에 내세운 탓에 씨스타는 30~40대 남성팬들도 주 팬층으로 가지고 있다.

      최근에 큰 인기를 끌었던 크레용팝, 레이디스코드 등은 3세대 걸그룹으로 볼 수 있다. 걸그룹의 춘추전국시대 속에서 파격적인 콘셉트로 돌풍을 몰고 온 크레용팝의 성공에 대해선 흥미롭게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 ‘음악이라는 도화지에 멤버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색상을 입힌다’는 취지로 팀명을 만들었다는 크레용팝은 2012년 7월 첫싱글 앨범 ‘Saturday Night’로 데뷔했다. ‘직렬 5기통 춤’으로 열풍을 일으켰던 ‘빠빠빠’는 사실 데뷔곡이 아닌 세 번째 싱글앨범이었다.

      크레용팝 성공, 걸그룹의 과제 역설
      노출도 전혀 없이, 헬멧과 치마 속에 트레이닝복을 껴입은 독특한 의상 콘셉트와 안무로 승부한 크레용팝의 인기에 대해 <빌보드>(크레용팝 빠빠빠:2013 K팝 대유행(K-Pop’s Viral Hit for 2013))도 심층적으로 분석했는가 하면, <월스트리트저널>은 “크레용팝이 중독성 강한 음악 빠빠빠로 올해의 강남스타일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성수 크롬엔터테인먼트 실장은 “빠빠빠는 선율보다 리듬에 집중한 곡이었다. 드럼과 베이스로 반복되는 비트와 이에 맞춘 안무와 경쾌하고 귀여운 창법이 대중들에게 어필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크레용팝의 성공은 걸그룹이 끝없이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코노미 조선
      글=조성아 기자 js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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