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그 맛집 모으니, ‘우와’ 사람들로 북적

      입력 : 2014.10.27 06:00

      식당가가 살아야 건물이 산다

      식당가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몇년간, 식당가를 임대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차별화한 사례들이 늘고 있다. 식당가가 건물 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예전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소문난 맛집 여러 곳을 한데 입점시키면서 성공을 거둔 상가들이 있다.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위치한 빌딩 ‘그랑서울’이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다. 바로 전국 유명 식당 9개가 모인 ‘식객촌(食客村)’ 때문이다. 이곳에 입점한 식당들은 모두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 소개된 한식맛집이다. 팔도 맛집을 한데 모아 ‘식객’이라는 스토리텔링까지 더하면서, 식객촌은 상당한 인기를 끌고있다. 점심시간에는 30분 이상 대기해야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랑서울 건물 내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뿐만 아니라 종로·광화문 일대 직장인들도 방문하기 때문이다. 지난 9월18일 식객촌을 찾은 직장인 김미경(31) 씨는 “점심을 먹기 위해 근무지인 시청에서 이곳까지 찾아왔다”고 말했다. 식객촌은 직장인들이 없는 주말에도 만화 속 맛집을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주문 건수는 한 달 평균 2만5000~3만건이다. 고영남 식객촌 공동대표는 “처음 식객촌이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하루 매출은 3000만원 정도였는데, 갈수록 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식객촌은 선물 기획단계부터 철저히 식당가 차별화를 시도해 성공을 거둔 사례다. 그랑서울이 식객촌 때문에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은 식당가가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커졌다는 증거다.

      식객촌 성공하자 인근 상권까지 호황

      식객촌을 ‘인기 많은 식당가’ 정도로 치부하기엔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식객촌이 키 테넌트(Keytenant·고객을 끌어들이는 핵심점포)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자연스레 건물 전체 임대료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그랑서울은 서울시내에서 가장 임대료가 비싼 건물이다. 지난 7월 조선비즈와 리맥스와이드파트너스가 조사한 2분기 서울 오피스 빌딩의 월 임대료를 보면 그랑서울이 3.3㎡당 13만8000원으로 가장 비쌌다.

      인근 직장인들과 유동인구가 그랑서울에 몰리면서 주변 상권까지 덩달아 임대료가 올랐다. 부동산 114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종각역 상권의 임대료는 전분기 대비 11.5% 상승했다. 식당가의 인기가 건물 전체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인근 지역 상권까지 활기를 띠게 된 것이다.

      이성우 GS건설 홍보팀 과장은 성공비결을 “식객촌은 그랑서울 사업 초기부터 체계적으로 기획해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밝혔다. 즉, 단순히 임대공간에 입주할 업체를 모집하던 기존 상가들과 달리, 처음부터 테마를 정하고 만들었다는 것이다. 고 대표는 “가기 쉬운 장소에 맛집을 모아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해, 검증된 식당에 스토리도 담아내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후 서대경 식객촌 대표가 만화 ‘식객’을 상품화 하자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허영만 화백을 찾아갔다. 두 달 만에 허 화백의 승낙을 얻어낸 이후, 이번엔 팔도 곳곳에 자리한 식객맛집을 찾아다녔다. 고 대표는 “식당 사장님들을 직접 찾아가 설득했다”며 “식당마다 열 번 이상 방문하는 노력 끝에 유치한 게 지금의 아홉 곳 식당”이라고 말했다.

      식당가 차별화로 성공을 거둔 경우는 식객촌뿐만 아니다. 갤러리아 백화점은 지난 2012년 10월, 기존 푸드코트를 개편해 ‘고메이494’로 탈바꿈시켰다. 박세훈 한화 갤러리아 대표는 식당가가 고객을 끌어 모을 중심콘텐츠가 될 것으로 보고, 직접 나서서 고메이 494 TF(테스크포스)팀을 꾸렸다. 한수윤 한화갤러리아 홍보팀 매니저는 “업체 선정부터 메뉴 기획에 이르기까지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실력 있는 맛집을 유치하기 위해 214개의 식당을 찾아다니며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갤러리아 백화점은 스시 마츠모토, 부자피자 등 예약하지 않으면 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 있는 식당들을 입점시키는 데 성공했다.

      서비스에도 신경을 썼다. 고메이494에서는 고객이 앉아 있는 자리에 직접 음식을 가져다준다. 레스토랑이 아닌 푸드코트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번호표에 있다. 음식 주문 후 받는 번호표에 칩을 내장해 고객 위치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장실 조명에도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여성 고객들이 ‘셀카’(셀프카메라)를 많이 찍는다는 점에서 착안해, 사진발이 잘 받는 조명 방법을 연구했다. 이를 위해 조명 담당자가 직접 셀카를 찍어보며 ‘사진 잘 나오는 조도(照度)’를 찾아냈다. 현재 고메이494 화장실 조명 조도는 2700~3000켈빈이다. 한 매니저는 “셀카가 예쁘게 나온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블로그와 SNS에 고메이 494에서 찍은 사진이 많이 올라왔다”며 “이로 인해 백화점 홍보효과를 제대로 봤다”고 말했다. 고메이 494 개장 이후 식품관 고객 수가 35% 증가하자, 2013년 갤러리아백화점 전체 매출은 전년보다 10% 증가했다.

       

      (위)IFC몰은 ‘브런쉭’, ‘꼬또’ 등 서울시내 인기 맛집을 유치했다. 덕분에 직장인뿐만 아니라 가족단위 고객들도 늘고 있다. (아래) 서울시 중구 배재정동빌딩에 위치한 ‘오버 더 디쉬’는 점심시간이면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다.

      대표가 팔 걷어붙이고 식당가 개편하는 이유

      IFC몰 역시 식당가에 맛집을 입점 시키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IFC몰 홍보를 대행하고 있는 오승훈 샤우트웨거너에드스트롬 대리는 “IFC몰이 입주사만해도 넓은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어 처음부터 입점을 희망하는 업체들이 많았지만, 특화된 맛집을 유치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밝혔다. 특히 IFC몰은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등에 위치한 이른바 ‘핫플레이스 맛집’을 섭외하는 데 힘썼다. 그 결과 유명 브런치카페‘르 브런쉭’, 화덕피자 전문점 ‘꼬또’ 등을 유치할 수 있었다. 오 대리는 “처음에는 여의도 근처 직장인들이 주로 방문했지만, 맛집들이 유명해지자 가족단위 손님이나 연인들도 방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최근 푸드코트 ‘오버 더 디쉬’가 건대 스타시티와 배재정동빌딩에 입점했다. 오버 더 디쉬에는‘공차’, ‘교동짬뽕’, ‘로봇김밥’ 등 인기 프랜차이즈들이 모여있다.
      식당가 입점을 희망하는 업체들이 먼저 찾아오던 예전과 달리, 기획자나 대표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맛집을 섭외하는 이유는 상가에서 식당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다. 고 대표는 “음식문화가 킬링 콘텐츠가 되고 있다”며 “‘식객촌 가자’고 하지, ‘청진상점가(그랑서울 상가명) 가자’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식당가가 살아야 건물이 산다는 얘기다.

      그 배경에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변화가 있다. 소비시장의 주도권이 386세대(1960년대 출생한 80년대학번 세대)에서 397세대(1970년대 출생한 90년대 학번 세대)로 넘어가면서, 30대 소비자들이 미치는 영향력이 커진 것이다. LG경제연구소가 지난 2012년에 발표한 보고서 <문화와 소비를 주도하는 대한민국 30대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에 따르면, 이들은 특히 음식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취미로 요리를 하는가 하면, 맛있는 식사를 위해 지불하는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 몇 년 사이, 식도락 문화가 발달한 것도이 때문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13>에서 소문난 맛집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을 ‘미각 노마드족’이라고 정의하고, 미각에 투자를 쏟는 소비 행태를 주목해야 할 소비 트렌드로 꼽았다. 음식을 그저 끼니를 때우기 위한 수단이 아닌 행복감을 주는 문화로 여기는 소비자들이 늘고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식당가는 단순한 임대 공간을 넘어서서 건물의 중심 전략지로 부상했다.

      여러 식당이 뭉쳐 하나의 거대한 맛집으로

      전문가들은 또 다른 원인으로 유통채널 다변화를 지목한다. 지금보다 요식업 시장이 작았던 시절에는 인기 프랜차이즈나 식당이 많지 않다 보니, 유통채널이 단순했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 때문에 예전에는 베스킨라빈스 같은 유명 프랜차이즈 점포가 건물에 입점하면, 그것만으로도 인지도가 올라가고 모객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이 커진 이후, 유명한 프랜차이즈나 맛집이 워낙 많아 졌기 때문에 한 점포로는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게 유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유통채널이 다양해지니, 유명 식당을 한데 모아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라며 “명품브랜드가 모인 LVMH가 하나의 메가 브랜드가 됐듯이, 여러 개 식당이 뭉쳐 거대한 맛집이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입점 식당 측에서도 다른 맛집들과 함께 자리하면 이점이 많다. 유 교수는 “인기 식당이 한곳에 모이면,홍보 효과나 노하우 공유 등의 집적이익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식객촌의 경우 공동체시스템을 통해 집적 이익을 극대화했다. 식객촌에 입점한 식당들은 매출에서 20%의 임차료를 제한 뒤 수익을 똑같이 나눈다. 언뜻 보면 장사가 잘되는 식당만 불리한 구조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요식업은 계절을 타기 때문이다. 막국수나 빙수처럼 여름에 장사가 잘되는 식당은 겨울에는 장사가 잘 안 된다. 마찬가지로 곰탕, 칼국수 등 겨울에 잘 되는 식당은 여름엔 손님이 없다. 이 때문에 서로 매출을 공유하면 불황기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여기에 식객촌 식당들은 서로 일손도 나눈다. 내 가게가 한산하면 옆 가게 일을 돕고, 이쪽 일손이 부족하면 옆 가게도 나를 돕는 식이다. 이렇게 상부상조하다 보니 공동체의식도 생겼다. 마치 옛 농촌 두레 같은 모습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이런 ‘맛집 집결지’는 편리함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제는 ‘오두산 메밀가’에서 녹두빈대떡을 먹기 위해 경기도 파주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유명한 맛집을 가려면 이곳저곳으로 발품을 팔아야 하는데, 접근성이 높은 장소에 괜찮은 식당이 모여 있으니 소비자를 끌어모을 수밖에 없다”며 “마케팅 측면에서도 방문객 증가가 다른 구매로 이어져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식당을 선택하는 데 따른 위험 역시 감소한다. 검증된 맛집들로 구성된 식당가는 어느 식당을 가도 품질이 어느 정도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소비자는 맛없는 식당에서 식사하게 되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허 교수는 “실패 위험이 작다는 점이 소비자가 (맛집 집결지 내) 새로운 식당을 방문하게 만드는 유인으로 작용한다”며 “이번에는 이집에서 먹어보고, 다음에는 저집에서 먹는 식으로 계속해서 재방문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미 조선
      이수빈 인턴기자·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anagram_@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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