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자녀 품은 부모세대, 노후준비 발목 잡혀

      입력 : 2015.06.17 08:00 | 수정 : 2016.01.26 10:11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이코노미조선 공동기획 ⑨
      영화 ‘고령화가족’으로 본 현실 속 노후의 자화상

      천명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고령화가족’. 영화는 전쟁터와 같은 사회생활에서 패잔병이 된 자식들이 엄마 곁으로 돌아오면서 생기는 다양한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영화 ‘고령화가족’에 비친 모습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상태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현실과 이런 자녀들을 품에 안을 수밖에 없는 부모세대의 노후 현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상태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자녀와 그들을 품에 안을 수밖에 없는 부모세대의 노후 현실을 그린 영화 ‘고령화가족’.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상태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자녀와 그들을 품에 안을 수밖에 없는 부모세대의 노후 현실을 그린 영화 ‘고령화가족’.

      영화 속 주인공 가족의 평균 나이는 47세. 게다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家長)은 장성한 자녀가 아닌 부모다. 이런 모습을 입증해주는 실제 자료는 통계청이 발표한 ‘2010~35년 장래 가구추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0년에는 가장의 평균 나이가 40대인 경우가 전체 25.6%를 차지해 가장 많다. 2035년에는 가장의 평균 연령이 60대(22.5%)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가장이 65세 이상인 가구가 전체의 40.5%인 903만 가구로 나타났다.

      통계청은 같은 자료에서 우리나라의 가구 유형도 크게 변할 것으로 예측했다. 2010년에는 부모와 자녀가 같이 사는 가구가 37%로 가장 많았지만, 2035년에는 1인가구가 34.3%로 가장 많고 다음은 부부만 사는 가구(22.7%), 부부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구(20.3%) 순으로 바뀔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1인가구의 비중이 2인가구를 앞질러 전체 가구유형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등 가족해체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고령화로 인한 가족의 재구성

      그런데 영화 속 가족의 모습은 실제 통계자료의 분석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둘째 아들 인모의 독백인 “집을 떠난 지 20여년 만에 우리 삼남매는 모두 후줄근한 중년이 돼 다시 엄마 곁으로 모여 들었다”처럼 주인공 가족은 흩어졌다 뭉쳤다. 전통적인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급격히 변화하면서 가족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의 변화를 겪게 된다. 핵가족에 이어 싱글족이 늘어나면서 1인가구도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영화의 배경처럼 과거 대가족 형태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사례가 종종 언급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는 선진국 가운데 일본과 미국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이웃나라 일본에선 가족구성원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전체의 30% 이상을 독신세대가 차지하는 가운데 부모와 자녀 등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한 대가족 형태가 늘고 있다. 불안정해지는 고용 환경과 세금·보험료 상승으로 인해 가계부담의 증가라는, 점차 험난해지는 사회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일가족이 모여 가계부담을 최소화하고 소비활동을 함께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본정부에서 2010년에 실시한 ‘국세조사’를 보면, 단카이세대(團塊世代·1947~49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60대 세대주의 가족구성이 부부 둘이서만 생활하는 세대보다 ‘부모와 미혼의 자녀’로 구성된 세대가 더 많아진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는 무라타 히로유키(村田裕之)의 저서 <그레이마켓이 온다> 중 “빨리 이 집에서 나가야지. 여기는 세금만 높고, 물가도 비싸고, 노후를 보내기엔 너무 힘들어”라는 미국 베이비부머의 인터뷰 내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베이비붐 세대의 ‘대이동’이 시작되고 있다. 이동에는 세 가지 타입이 있다.

      첫 번째는 지금 사는 곳보다 세금이나 생활비가 적게 드는 곳으로 가는 이동이다. 두 번째는 광대한 초지(草地)가 있는 큰 집에서 더 작은 집으로 옮기는 이동, 소위 말하는 다운사이징이다. 미국은 일본과 달리 정년이 없지만 회사원은 대개 60세에서 65세 사이에 퇴직한다. 연금은 나오지만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연금수입만으로 유유자적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국가가 보장하는 의료보험제도가 없는 미국에선 65세 이상 시니어와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지원을 제외하면 공적 의료보험이 없다.

      때문에 자비로 민간보험에 가입하는데 요양보험 등 고령자 대상 보험은 보험료도 비싸다. 평균수명은 늘고 세금과 의료, 요양비용도 증가하는데 수입은 늘어날 기미가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비용을 낮춰도 생활의 질은 크게 낮출 필요가 없는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세 번째 타입은 세대별로 독립해 따로 살고 있다가 부모-자녀 2세대 혹은 부모-자녀-손자 3세대 등 ‘다세대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집으로 이동하는 경우다. 다세대 가정이란 복수 세대가 한 지붕 아래 함께 사는 형태를 말한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향후 10년 사이에 미국 세대의 3분의 1이 다세대 가정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고령화가족’이 영화의 제목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생긴 것이다.

      인생 후반 또 하나의 복병, 신(新)캥거루족

      일본과 미국의 사례처럼 고령화에 따른 대가족으로의 회귀현상은 새로운 모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장면 “아니, 근데 저것들은 낫살이나 처먹고 무슨 웬수가 져서 아직까지 늙은 어미 등골을 뽑아 먹고 있어?”처럼 성인자녀들이 집으로 귀환하는 것은 자칫 부모의 노후준비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고령화가족’처럼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상태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세대의 모습은 현실 속 ‘신(新)캥거루족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본래 캥거루족이란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취업을 하지 않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면서 얹혀살거나, 취업을 했더라도 경제적인 독립을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30~40대 젊은층을 일컫는 말이다. 마치 어미 캥거루의 주머니에서 보살핌을 받고 살아가는 캥거루를 빗댄 신조어다. 캥거루족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선 대학 졸업 후에도 취업을 못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 곁에서 머무는 자녀를 ‘낀 세대’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트윅스터(Twixter)’라고 부른다. 캐나다에서는 직업을 구하러 이리저리 떠돌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는 뜻에서 ‘부메랑 키즈’라고 한다. 영국에서는 부모 퇴직연금을 축낸다는 뜻에서 ‘키퍼스(KIPPERS·Kids in Parents Pockets Eroding Retirement Savings)’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에서는 모친이 해주는 음식에 집착한다는 말로 ‘맘모네 (Mammone)’라고 칭한다. 최근에는 영화 속 모습처럼 신(新)캥거루족까지 등장했다. 신캥거루족은 경제적으로 독립할 나이가 됐음에도 비싼 집값, 자녀 양육, 재테크 등의 이유로 부모와 동거하는 30~49세 자녀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실제 현실에서도 이 같은 신캥거루족이 늘고 있다.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 가족구조 통계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으로 서울시 거주 30~49세 성인 중 48만5000여명이 부모가 가구주인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에 비해 91%나 증가한 수치다.

      노후에도 자식 뒷바라지 하는 부모세대

      재산을 무조건 자녀에게 상속하기보다는 자신의 노후준비에 사용하려는 부모세대가 늘고 있다.
      재산을 무조건 자녀에게 상속하기보다는 자신의 노후준비에 사용하려는 부모세대가 늘고 있다.

      “그 거미줄로 새끼들 집도 짓고 새끼들 먹이도 잡는 거란다. 그렇게 새끼들 다 키우면 내장이란 내장은 다 빠져나가고 거죽만 남는 것이지.” - 박제영 시인의 ‘늙은 거미’ 중

      신캥거루족의 등장과 연관시켜 볼 수 있는 현상 가운데 ‘대한민국 60대는 늙은 거미’라는 얘기가 있다. 늙은 거미는 먹을 게 없으면 새끼에게 자기 살을 내주는 습성이 있다. 자식 뒷바라지에 올인하다 보니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낯선 노후 앞에 속수무책인 것이 대한민국 60대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자식에게 손을 벌리자니 자식들의 삶 또한 고단하기는 매한가지다. 영화 ‘고령화가족’의 내용도 현실을 반영하듯 환갑을 훌쩍 넘긴 홀어머니 집에서 나잇값 못하는 자식들은 악다구니하며 살아간다. 그래도 자식이라고 식탁에 삼겹살 한쪽이라도 올리려고 악착같이 일하는 건 나이 든 엄마다.

      영화의 모습처럼 실제 우리나라 부모 세대의 삶은 노년에도 고달프다. 소를 팔아서라도 대학 공부를 시키고 신접살림집을 마련해줘야 부모 노릇을 했다고 믿는 한국인들은 늙은 거미처럼 모든 걸 자녀에게 내어주고 ‘하우스 푸어’로 늙어간다. 기대수명은 선진국만큼 늘어났지만 자산이 감소하는 시기는 미국, 일본보다 10년 이상 빠른 60세부터다. 이런 상황을 빗대어 중산층 가족이 일자리도, 소득도, 자산도 없는 ‘닌자(NINJA·No Income, No Job or Asset) 가족’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결국 ‘고령화가족’은 ‘잘 살기도 전에 늙는다(미부선로·未富先老)’라는 말처럼 부자가 되기도 전에 너무 빨리 늙어버린 한국을 살아가는 이 시대 중산층의 초상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부모들의 인식도 변하고 있다. 자산을 무조건 자녀에게 상속하기보다는 자신의 노후준비를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내 집 한 채는 꼭 쥐고 살아야지’라며 집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노년층이 갈수록 늘고 있다. 과거에는 자녀에게 집 한채는 물려줘야 한다는 부모가 많았다. 그러나 기대수명이 늘어나는데 모아 놓은 노후대비자산은 부족해지는 등 은퇴준비환경이 확 달라지면서 집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집을 자녀에게 상속하기보다는 거주와 노후준비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주택연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노후준비를 바라보는 관점과 의식도 변하고 있다. 통계청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고령자의 생활비 마련은 자녀 또는 친척(39.2%), 정부(9.1%)보다 본인(51.6%)이 직접 한다. 미국의 퓨 리서치센터(Pew research)가 세계 21개국의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노후생활은 본인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응답률이 유일하게 절반을 넘긴 53%로 나타나 노후의 자기책임감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회적 복지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데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에 노후를 온전히 맡길 수 없다는 데 따른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모의 현재 모습은 결국 자녀세대의 미래가 될 수 있다. 부모세대가 행복한 노후를 보여주는 것이 궁극적으로 젊은 세대에게 긍정적인 미래상을 제시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무분별하게 자녀를 지원하는것보다 ‘본인의 풍요로운 은퇴 후 삶을 챙길 수 있는, 조금은 이기적인 부모가 되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볼 만하다.

      김종욱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
      jwkim0303@hanwha.com



      / 이코노미 조선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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