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기로 술 빚는 아름다운 양조장 충북 청주 '풍정사계'

  • 디지틀조선일보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명욱

    입력 : 2017.04.20 08:00

    계절적 문화를 듬뿍 담은 마을 속 작은 양조장 ‘풍정사계’

    약 10년 전, 적도 근처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 거주한 적이 있었다. 그 나라는 어디를 가나 깨끗한 거리와 초고층빌딩, 화려한 야경. 한마디로 신도시이자 계획된 정비도시였다. 초기에는 이런 모습에 무척 만족한 삶을 살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곳에서의 생활에 아쉬움과 허전함이 느껴졌다. 불편함이나 사람에 대한 그리운 감정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 감정이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외국 친구의 한마디에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바로 이 지역은 어디를 가나 다 비슷하다는 것. 땅은 있었으나 그 땅이 가진 깊이, 다시 말해 역사가 짧다 보니 늘 어디나 똑같은 고층건물의 신도시밖에 없었다. 게다가 계절이 없으니 그것에 맞는 추억도 없는 것은 당연할 터. 늘 같은 것만 보다 보니 시간이 흐른다는 현실적 느낌도 더디게 갔고, 그것이 허전함으로 남았다고 그는 말했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서의 삶은 계절적 풍요로움이 같이 있었다. 꽃이 만개하는 봄, 만물이 생기 넘치는 여름, 풍요로운 과실의 가을, 새하얀 눈으로 덮이는 겨울. 그 계절은 땅마다 지역마다 다른 기억과 추억, 그리고 역사를 가져왔다. 한국에서 시간적 흐름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는 리얼리티가 존재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계절은 각각의 지역마다 색을 다르게 입혔고, 사계란 계절적 문화 속에서 한국의 음식문화는 발전해왔다. 전통주 역시 계절에 맞는 술을 만들어 왔다. 비록 땅 덩어리는 넓지 않을 수 있으나, 수천 년간 살아온 사람들이 있기에 그 속은 깊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지난주 청주 내수읍의 작은 양조장을 방문해 보았다. 작지만, 사람의 추억이 서려 있고, 계절의 문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지역의 소박한 문화을 담아내고 있었다. 이름은 풍정사계 화양 양조장. 술이 빚어지는 양조장이 있는 곳, 풍정리의 사계를 담아 화합하는 마음으로 술을 빚었다는 뜻이다.
    풍정사계 화양 양조장 들어가는 입구. 느티나무의 새순이 활짝 열렸다
    부부 둘이서만 운영하는 작은 양조장. 양조장 터는 가족의 추억이 서려있어
    풍정사계 화양 양조장이 위치한 곳은 청주시 풍정리. 단풍 풍(楓), 우물 정(井)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무와 물이 좋은 곳이다. 마을 내로 들어가면 옛 건물에 작은 간판이 보이는데, 바로 이것이 풍정사계 화양 양조장 입구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이곳이 양조장인지 일반 한옥인지 구분이 잘 안 갈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곳은 술을 빚는 이한상 씨 내외가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 양조장 안에는 아담한 마당이 있고, 뒤쪽으로는 해발 10m 내외의 귀여운 뒷동산이 양조장을 받쳐주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양조장 터는 이 곳 대표인 이한상 씨의 고모가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뒷동산은 오누이가 어릴 적 숨바꼭질을 하던 곳. 가족의 모든 추억과 기억이 남겨진 곳이기에 이곳에서 터를 잡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오직 부부 둘이서만 빚는 술이 바로 풍정사계(楓井四季)이다.
    풍정사계 양조장 내부. 방문한 날은 살짝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좋은 술 만들어 맛과 문화 알려보자고 시작한 양조장
    부부가 술을 빚기 시작한 것은 약 10여 년 전. 국문학을 전공한 이한상 씨는 계절적, 지역적 문화가 어우러진 한국의 전통주 문화가 좋아 전주, 서울 가릴 곳 없이 술을 빚으러 다녔다. 거기에 이한상 씨의 아내인 이혜영 씨도 가세했다. 부부가 전통주 빚기에 매료된 것은 발효의 섭리에 대해 다가갈 수 있다 것.
    직접 백설기로 찌는 모습. 하나부터 열 가지 다 수작업이다
    같은 쌀로 술을 빚는다 해도 베이스가 밥(고두밥), 떡, 죽일 찌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바꿨고, 발효용기의 크기도 술 맛을 다르게 했다. 무엇보다 어느 계절에 빚느냐에 따라서도 술맛에 차이가 났다. 이렇게 원료를 아끼지 않고 만든 술은 시중의 소주, 맥주와는 맛 차이가 너무 확연히 난다. 부부는 좋은 술 만들어 그 맛과 문화를 알려보자고 결정을 한다. 그리고 그 베이스는 우리고향, 우리 동네에서 우리 농산물로 만들어보자고.
    술을 빚기 위해 백설기로 찐 모습. 기존의 백설기와는 달리 감미료가 없어 맛이 담백하다

    백설기로 술 빚는 풍정사계, 이유는 맛의 화합
    술빚기를 하다 보니 부부에게 고민이 있었다. 바로 무엇을 베이스로 술을 빚을지에 대한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쌀을 베이스로 한다 해도 발효 베이스를 밥, 떡, 죽에 따라 다 맛이 달라졌다. 부부가 선택한 것은 떡. 그것도 백설기였다. 쌀을 갈아서 백설기로 쪄서, 그것에 누룩과 물을 넣고 발효시키는 것이다. 백설기로 한 이유는 바로 맛의 조화. 밥(고두밥)으로 하면 맛이 날카로와질 때가 있었고, 죽으로 하면 너무 부드러웠다. 그래서 모든 맛의 화합을 이루기 위해 그 중간인 백설기로 술을 빚기로 한다. 그래서 이곳의 술은 어느 맛 하나 튀지 않은 뭉근한 맛과 향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고민해서 술을 빚어보니 술맛에 대한 평가는 바로 나왔다. 양조장 등록한지 1년도 안되었는데 전통주 마니아들이 찬사를 던지고, 농림부에서 주최하는 우리술 품평회에서 약주 부분 최우수상, 증류식소주 부분에서도 최우수상을 수상한다.

    부부가 술을 빚는 모습. 누룩을 넣고 백설기를 풀어주고 있다. 산업화된 모습은 아니지만 손으로 하나하나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궁중에서 썼다는 녹두누룩을 쓰는 이유는?
    이곳 술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전통식 밀 누룩을 쓴다는 것.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많이 생산되지 않은 우리 국산 밀이다. 발로 밟고 처마 밑에 매달아 발효 숙성시킨다. 흥미로운 부분은 밀 누룩에 녹두를 넣는다는 것. 녹두누룩은 향온곡(香醞麯)이라 불리며 조선시대 궁중 내의원에서 빚던 방식이었다. 궁중에서 녹두누룩을 쓴 이유는 녹두자체가 알코올해독기능이 있기 때문. 그래서 녹두죽은 아침 해장에 좋으며, 막걸리를 마실 때도 녹두전을 많이 먹는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녹두누룩은 전통누룩 중에서도 단백질 함량이 많아 만들기 어려운 축에 속했다. 단백질의 특성상 조금만 잘못하면 누룩에서 쉰내가 나고 발효가 되지 않는다. 10년간의 연습을 통해 세상에 내놔도 될만한 녹두누룩을 만들어 냈다. 이한상 씨는 녹두를 쓴 이유를 지금처럼 건강을 생각해서 넣은 것도 있지만, 진짜는 바로 맛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빚은 레시피에 녹두누룩을 쓰면 맛이 부드러웠다는 것. 결국은 자신이 추구하는 맛과 일치했다는 의미가 된다.

    봄가을에는 술 빚기, 여름에는 누룩빚기. 겨울에는 숙성하기
    풍정사계는 꽃피는 봄과 수확의 가을에는 술을 빚고, 여름에는 누룩을 중점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겨울에는 그 술들을 숙성을 시킨다. 봄과 가을에 술 빚는 이유는 그때가 온도가 15도~20도 정도로 효모가 생활하기에 좋은 환경이기 때문. 누룩은 고온다습한 환경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여름에 빚는 것이다. 겨울에 숙성하는 이유는 추운 날씨로 자연스럽게 저온숙성이 되기 때문. 숙성기간 또한 길다. 막걸리는 보통 100일 숙성, 약청주는 150일~200일 정도 숙성시킨다. 전통 증류식 소주는 동증류기를 통해 상압증류, 약 2년을 숙성시켜 내놓고 있다.

    특히 약청주는 단순히 인위적인 압착을 통한 여과를 하는 것이 아닌 중력을 통해 천천히 앙금을 가라앉히고, 윗술만 떠서 만드는 등 중력을 거스리지 않고 더욱 자연의 맛에 가깝게 만들고자 했다. 재미있는 곳이 이곳은 누룩을 발효시키는 공간이 따로 없다는 것. 한여름에 연잎에 쌓아 처마 밑에 매달아 놓는다. 딱 누룩발효에 좋은 온도(30도 전후). 그리고 한여름의 습기가 최상의 누룩을 만들어 준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해서 풍정사계 술에는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있는 것이다.
    양조장 뒤의 뒷동산. 이한상 씨가 어릴 적 뛰놀던 곳이다
    화려하지 않은 술 맛. 하지만 최고의 밸런스
    풍정사계의 술, 특히 약청주는 결코 화려한 맛은 아니다. 특별히 달지도 않으며, 최근 주류업계에서 유행한다는 과실 향도 적다. 막걸리처럼 짜릿한 맛도 아니며, 탄산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어느 하나 튀지 않는 맛의 밸런스가 이상적이라고 많은 사람이 평가한다. 단맛도 적고 과실 향이 튀지 않으니 식전주 보다는 식사와 같이 하는 식중주로 인기다. 무엇보다 질리지 않고 오랫동안 천천히 마실 수 있다. 화려한 스타일보다는 단정한 모습, 그 단정한 모습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나 할까? 어색하지 않은 맛, 하지만 결코 자주 접할 수 없는 맛. 그것이 풍정사계 술의 매력이다.
    가을에 찍은 풍정사계의 모습
    술이 아닌 사람을 만나러 가는 곳. 그곳이 풍정사계
    풍정사계 화양 양조장은 화려한 전시관도, 짜릿한 체험도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사람의 추억이 서려있고, 술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사람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술은 무엇보다 전통과 지역 문화, 나아가 내 고향을 알린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비록 특별한 체험은 없지만, 미리 전화 등으로 연락을 한다면 따뜻한 부부내외가 양조장을 안내 해 줄 것이다. 그 안내하는 모습 속에는 자극적이고 화려한 것이 아닌, 어릴 적 뛰놀던 뒷동산, 그리고 고모가 태어난 집, 그리고 30평 내외의 작은 양조장, 그리고 사시사철 피는 꽃과 나무를 보여줄 것이다. 무엇보다 이제 막 숙성이 끝낸 풍정리의 귀한 술을 맛보게 해 줄 것이다. 느티나무가 화려하게 가지를 내린 풍정리의 수려한 모습도 보면 더욱 좋다. 여태껏 우리가 잊고 살던 내 고장, 내 고향과 같은 마음으로 말이다.
    이한상 씨 부부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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