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휴가 권하는 기업…"길게 가야 오래 다녀"

    입력 : 2017.06.20 19:49

    장기휴가·무급휴직 도입 잇달아
    생산성 향상, 애사심도 높여
    한달 안식휴가·2주 의무휴가…
    삼성전자는 1년 무급휴직제 운영
    눈치 보느라 차마 휴가 못쓰기도
    경직된 조직문화…실효성 논란도

     

    올해 승진한 한화케미칼 민경원(32) 과장은 4월 초부터 한 달간 휴가를 다녀왔다. 민 과장은 휴가 중 보름은 남편, 여섯 살배기 딸과 함께 하와이로 여행을 갔다. 2008년 입사 이후 이렇게 긴 여행은 처음이었다. 민 과장은 “처음엔 ‘회사에서 진짜로 한 달짜리 휴가를 보내줄까’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다녀오니 재충전이 돼 일에 대한 의욕도 더 생겼다”고 말했다.

    민 과장이 활용한 휴가는 올 3월 한화가 과장·차장·부장 승진자를 위해 만든 1개월짜리 ‘안식월(月)’ 휴가. 관리직이 되기 전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재충전하라는 취지다. 한화그룹에선 지금까지 20여명이 이 휴가를 다녀왔다. 칠레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여행을 가겠다는 직원도 있다.

    국내 대기업들이 최근 기업 문화를 개선하겠다며 장기 휴가나 연수 제도를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직원들의 애사심을 키우고, 재충전 기회를 줘 생산성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눈치 보기’ 문화가 만연한 현실 속에서 기업 전반으로 퍼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앞다퉈 장기 휴가·연수 제도 도입
    CJ그룹은 지난달 파격적인 휴직·휴가 제도를 담은 기업 문화 혁신 방안을 내놨다. 근속 연수가 5년만 넘으면 어학연수 등을 위해 6개월 동안 무급 휴직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또 근속 연수가 5년·10년·15년 등 5년씩 늘어날 때마다 4주의 휴가를 주고 근속 연수에 따라 50만~500만원의 휴가비도 지급한다.

    이랜드그룹도 이달 초 발표한 7대 조직 문화 혁신안에 ‘2주 휴가 의무화’를 담았다. 이랜드그룹은 모든 직원이 올해 2주 여름휴가를 갈 수 있도록 임원들의 휴가 일정을 먼저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2015년 하반기부터 3년 이상 근속자 중 희망자에 한해 1년간 무급 휴직을 할 수 있는 ‘자기 계발 휴직제’를 운영하고 있고, KT도 10년 차 직원들은 6개월, 20년 차 직원들은 1년간 유급 휴직 할 수 있는 ‘리프레시 휴직’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SK텔레콤도 근속 10년과 20년 때 각각 45일 휴가를 주고 있다.

    ◇애사심·생산성 높이지만 실효성 논란도
    인사 전문 컨설팅사인 휴먼컨설팅그룹(HCG)의 김주수 상무는 “구직난이 심하다지만 기업끼리는 지금도 우수 인재 확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런 제도가 인센티브가 돼 우수 인재를 붙잡아두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애사심을 고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경직된 조직 문화 때문에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10대 그룹에 다니는 한 차장급 직원은 일에 몰두 안 하는 스타일로 찍힐까 봐 차마 장기 휴가를 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은 1년에 평균 14.2일의 연차휴가를 보장받지만, 이 중 60%만 사용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연차 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데 우량 대기업만 이런 혜택을 누린다는 비판도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전국의 사업체 1570곳을 표본 조사한 결과, 연차 휴가가 아예 없는 사업체가 6%에 달했다. 이들 대부분은 근로자 30명 미만의 소규모 업체였다.

    양동훈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선진 기업일수록 휴식을 노는 걸로 보는 게 아니라 집중 근무를 위한 준비로 본다”면서 “장기 휴가와 연수 등이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선 기업들이 제도 도입에만 머물러선 안 되고 문화 변신 노력도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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