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유명한 전통주, 안동소주의 진짜 이야기

  • 디지틀조선일보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명욱

    입력 : 2017.06.29 08:00

    전통주란 이름만큼 참 생소하게 느껴지는 술이 없다. 그 이유는 ‘전통주’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전통스럽게 만들었다는 뜻이기는 한데, 막걸리가 모두 포함되는 것인지, 하다못해 우리들이 자주 접하는 초록색 병 소주도 전통주인지, 일반인 입장에서는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딱 하나는 안다. 바로 안동소주. 마셔보지는 않았으나 이름 하나는 들어봤다. 그런데 왜 안동소주가 유명한 걸까? 언제 그 이름을 알린 것일까?

    안동소주 전에 시작된 한국 소주의 기원

    소주는 일반적으로 고려 시대, 몽골 간섭기 시절, 고려에 병참기지를 세우면서 들어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유는 광해군 시절에 쓰인 당시로써는 백과사전인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이러한 부분이 언급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개성, 제주, 안동이 일본에 쳐들어가기 위한 병참기지(주석 1)였고, 몽골군이 주둔하면서 소주 기술(증류 기술)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약청주 5병에 소주 한 병밖에 안 나오는 최고급 술이었고, 특별한 집안이 아니면 쉽게 만들 수 없는 고급품이었다. 결국 세도가집안이 아니면 마시기 어려운 술이었던 것이다.

    이러다 안동지역이 고려 말 공민왕 시기에 큰 공을 세우게 된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공민왕이 안동으로 몽진해 온 것이다. 그러자 안동의 세력들이 힘을 합쳐 공민왕을 지켰고, 결국 홍건적을 물리치며 개경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공민왕은 안동지역에 대도호부(大都護府)라는 국가의 수도를 지키는 곳이라는 칭호를 준다. 이렇다 보니 고려 말 때부터 세력을 확장시키던 안동 출신의 신진사대부가 자연스럽게 영역을 확장한 것은 당연한 지사. 덕분에 조선시대에는 특별한 세도가를 만들어 나가기도 했다. 결국 소주는 당시로는 최고급 술이었으며, 세도가 가문이 많은 안동에서 소주가 발달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모습이었다. (주석 2)

    다양한 안동소주. 왼쪽부터 금복주 안동소주, 일품 안동소주, 민속주 안동소주, 하회탈 녹색은 명인 안동소주, 금색은 18년산 명인 안동소주, 가장 오른쪽도 명인 안동소주 35도 유리병이다. (출처 장희주기자)
    안동소주란 이름은 문헌에 없다?

    지금껏 내려오는 수많은 전통주는 실은 상당수가 문헌에 있는 술이다. 소곡주 및 죽력고, 이화주 등 역시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안동소주는 정확하게 쓰여있지 않다. 다만 안동에서 쓰인 조리서에 소주 빚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조선 중종 때 김유가 쓴 한문 필사본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 안동 장 씨에 의해 최초로 쓰인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 1700년대 작자 미상의 한글 조리서 ‘온주법(蘊酒法)’이란 책에 소주 제조 방법이 나와있다. 결국 안동소주라는 이름보다는 안동에서 소주를 많이 마시니 자연스럽게 안동소주란 이름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안동소주란 이름이 널리 퍼지게 된 계기, 일제 강점기 시절의 제비원표 안동소주


    안동소주가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고려 시대나 조선시대는 아니다. 당시만 해도 지역의 술이 아닌 집안의 술이었다. 그러면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을까? 실은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일제강점기 시절이다.

    1920년 안동 최대의 부호인 권태연(權台淵)씨는 안동시 남문동 184의 800평의 대지에 소주공장을 세우게 된다. 공장이름은 안동주조회사. 그 소주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제품명은 바로 제비원표 소주로 이른바 상품화된 안동소주의 효시이자,  대량생산의 길을 연 곳이다. 당시 제비원 소주는 흑국균을 사용한 누룩을 써서 만들던 방식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흑국균이 일본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실은 우리 누룩에도 있는 균이었다. 하지만 주류에 대한 산업화를 먼저 진행한 일본이 누룩균 중 흑국균을 추출해 소주 제조용으로 대량 보급하던 시절이었다. 결국 산업화를 늦게 시작한 당시로서는 선택의 여지없이 이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러 가지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만드는 사람도 한국인이었고, 물도 원재료도 한국 것이었기에 충분히 안동 것이라고 부를 만한 자격이 있다. 이러한 제비원 안동소주는 만주, 일본으로 수출되면서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안동에 있는 제비원 석불. 안동에서 영주로 가는 5번 국도에서 보인다. 안동의 심볼이기도 했다. (사진 출처 문화재청)
    희석식 소주로 전락해버린 제비원 안동소주, 1974년에 금복주에 통폐합

    1950년대의 술 시장은 소주업체들의 각축전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특히 1954년부터 10년 동안은 이른바 ‘소주들의 전쟁’시기라 불린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 세운 풍국주정, 직접 발효하고 증류하여 만든 명성 양조장의 스타 위스키, 삼미 소주, 백구 소주 등이 대표적이다. 제비원 안동소주는 주인이 바꿔가면서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1965년 전후로 엄청난 시련이 닥쳐온다. 술 먹을 곡물이 부족해지다 보니 쌀 등의 순곡으로 술을 빚지 못하게 했던 것. 이제까지 많이 만들던 순곡으로 빚고 증류한 '증류식 소주'가 사라지고 양조용 알코올인 주정(수입 농산물 및 고구마, 주정 자체를 수입하는 등)을 희석한 '희석식 소주'로 발 빠르게 전환되던 시기가 온 것이다.

    제비원 안동소주 역시 이제까지 증류식 소주로 나오다가 결국 희석식으로 바뀐다. 그리고 더이상 안동에서 만든 것이 아닌 대구의 경북소주공업이란 곳에서 만들었다. 그렇게 명맥을 유지하던 제비원 안동소주는 1970년 국세청에서의 양조장 통폐합 시정 등 여러가지 이유로 1974년 금복주에 통폐합을 당한다. 결과적으로 자본집약적인 소주 산업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제비원표 안동소주. 제비원 석불이 눈에 띈다. (출처 찾아가는 양조장 SNS 기자단 허미화(http://deepp.blog.me/) 님)
    무형문화재 지정으로 다시 등장한 민속주 안동소주

    1988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전통 소주는 잃었던 명맥을 하나씩 찾고자 하는 노력이 이뤄졌다. 전 세계의 소개할 우리 전통술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렇게 하나씩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면서 전통적인 술을 이어오고, 이어온 분들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문배주, 경주 교동법주, 면천두견주였다. 이 3종의 술은 국가 재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된다. 그 외 이강주, 오메기 술 등은 시도 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된다. 안동소주는 경상북도로부터 무형문화재 지정이 된다. 유명한 민속주 안동소주를 빚는 조옥화 명인은 1987년 5월 13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이후 1995년 명인 안동소주의 박재서 씨가 농식품부 식품명인으로 지정되는 등 안동소주는 ‘조옥화 안동소주’와 ‘명인 안동소주’ 양대 산맥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특히 명인 안동소주는 2015년 농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로부터 체험과 문화가 있는 양조장 ‘찾아가는 양조장’으로도 지정이 된다.

    1990년대 다시 등장한 제비원 안동소주

    제비원 안동소주를 만드는 회사는 사라졌지만, 제비원이라는 상표는 살아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비원 안동소주를 만들던 경북소주공업을 금복주가 인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90년 전후로 제비원 안동소주를 다시 금복주에서 출시한다. 알코올 도수 43%. 가격은 1만 원대 초반이었다.

    현재 안동소주는 6곳 이상에서 만들어, 내 입맛에 맞는 안동소주를 찾을 때

    현재 안동소주는 조옥화 민속주 안동소주, 명인 안동소주, 일품 안동소주, 로열 안동소주, 양반 안동소주, 금복주의 안동소주까지 합치면 6곳 이상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모두 맛과 향이 각양각색이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조옥화 안동소주는 진한 향과 맛, 그리고 구워진 밥 양이 나는 것이 비해 명인 안동소주는 청량하며 깔끔한 쌀 맛 자체의 풍미 인식된다. 일품 안동소주는 부드러운 맛이 좋다는 평이다. 결국 내 입맛에 맞는 안동소주를 찾으면 된다.

    혼돈의 세월속에 지켜온 안동소주를 생각하며

    결국 안동소주가 진짜 유명한 이유는 시작은 몽골의 병참기지, 명문 있는 가문의 확장, 일제강점기 시절의 제비원 안동소주의 유명세, 그리고 지금의 안동소주 업체들의 노력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일제 강점기 시절에 등장한 제비원 안동소주란 존재는 100% 우리 것이 아닐 수 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로 산업화된 한국 술의 기원을 찾아가면 일제강점기 시절을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유명한 배, 사과 산지 상당수가 일제강점기 시절에 만들어졌다. 이러한 부분을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조사를 하면 할수록 정체성에 혼돈이 찾아왔다. 과연 다 우리 것이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 보니 우리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마늘을 많이 쓰는 이탈리아 요리를 보면, 마늘은 16세기에 들어왔다고 한다. 일본의 소고기 요리라고 불리는 스키야키와 샤부샤부는 불과 100년밖에 안됐다. 또한, 최고급 생선회 부위로 평가받는 참치뱃살 오토로는 100년 전에는 기름이 많다고 버려진 부위였다. 스카치위스키 역시 오크통에 숙성한지는 100~200년 정도 밖에 안되었으며, 런던 진 역시 네덜란드 의사가 만든 것이 시초가 되었다. 결국 문화는 누가 어떻게 즐기고 발전시키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통이란 이름을 남발하면 안되겠지만 안동소주가 우리 것이라고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 있다.

    (주석 1 '몽골군의 병참기지' : 몽골군은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안동, 제주, 개성에 병참기지를 만든다.가장 큰 목적은 현해탄을 건너기위한 배를 만들기 위함.여몽연합군이란 이름으로 고려, 1차, 2차에 걸쳐 정벌이 진행되지만,  결국 태풍 때문에 결국 제대로 상륙도 못하고 침몰해버린다. 일본에서는 이것을 신이 도와준 바람이라고 해서 신풍(神風), 가미카제, 즉 2차 세계대전 자살 특공대의 이름으로 불린다)

    (주석 2 '소주의 유래' : 증류를 통한 기술은 아랍지역의 연금술사에 의해 발명되었는데, 신라가 아랍과 교역을 한 만큼 이미 통일신라시대에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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