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 잡은 어르신들… 매출 4배 일자리 14배

    입력 : 2017.07.10 19:02

    '시니어 기업의 삼성' 최고 인기
    노인의 끈기·꼼꼼함에 최적작업
    사원증 건 어르신 인생도 바뀌어

    IT 기업 '에버영코리아'의 성남센터에서는 55세 막내부터 82세 큰형님까지 할아버지·할머니 70여명이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다. 이 회사 정은성 대표는 "노인 일자리가 곧 우리 매출"이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노인 일자리를 계속 발굴하겠다"고 말했다./성남=김연정 객원기자

    지난달 21일 경기 성남 분당신도시의 한 IT(정보기술) 업체. IT 업체인데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할머니 70여명이 프로게이머처럼 컴퓨터 키보드와 마우스를 두드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할아버지·할머니 10여명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코딩(coding) 강의를 듣고 있다. 저마다 ‘매니저’라고 적힌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2014년 대기업에서 명예퇴직한 뒤 이곳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김재현(57)씨가 웃으며 명함을 건넸다. “다른 데는 나이 많다고 이력서도 안 받아주는데 여기선 제가 영계예요.” 그의 명함 뒷면에는 ‘청춘은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이 아니다. 마음의 상태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는 “이제는 나 같은 퇴직자 전문 IT 강사를 꿈꾸고 있다”고 했다.

    김씨가 일하는 이곳은 네이버의 협력업체 에버영코리아(EVERYOUNG KOREA)다. ‘언제나 젊은 한국’이라는 회사 이름처럼 직원 430여명이 모두 씩씩한 노인이다. 여기선 막내가 55세, 최고참은 82세다.

    이들은 네이버가 찍어온 거리뷰(지도에서 실제 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서비스) 사진에서 행인의 얼굴이나 차량 번호판을 지우는 일을 한다. 인터넷 게시판의 욕설을 찾아 차단하거나 상품의 사진이 제대로 업로드됐는지, 인터넷으로 접수된 신용카드 발급 신청서에 빠진 내용은 없는지 체크하는 일도 위탁받아 한다.

    ◇4년간 노인 직원 14배 늘려

    /그래픽팀

    이 회사는 글로벌 용접 회사인 현대종합금속의 정은성(56) 대표가 “초고령화 시대에 IT 분야에서 노인 일자리를 만들어보자”며 2013년 설립했다.

    처음에 노인 매니저 30명을 모집했다. 그리고 네이버가 자회사에 맡겨 하던 거리뷰 업무를 일부 떼어와 시험 운영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노인이 무슨 IT냐” 했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생산성은 비슷한데 고객 불만이나 오류가 절반 수준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젊은 직원들은 단순 업무에 싫증 내고 회사를 옮기는 경우도 많았는데 노인들은 끈기가 강한 데다 꼼꼼하더라”며 “처음에는 사회 공헌 사업으로 생각했는데 한국 노인의 경쟁력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확신을 얻은 정 대표는 경기 성남과 강원 춘천에 추가로 센터를 열었고, 네이버뿐만 아니라 현대카드, 위메프 등도 고객사가 됐다. 연 매출은 2014년 18억원에서 지난해 70억원으로 3년 만에 4배가 됐다. 매니저는 30명(2013년)에서 430명으로 14배나 늘었다. 노인 IT 기업 에버영코리아의 성공 사례는 미국 워싱턴포스트, 영국 텔레그래프 등 외국 언론에도 소개됐다. 올해는 전북 전주에 추가로 센터를 낼 계획이다. 정 대표는 “앞으로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발굴해 낼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 삶도 바꾼 IT 기업의 역발상

    이 회사는 운영 방식 자체가 노인 맞춤형이다. 센터마다 업무가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하루 4~5시간씩 일하고 월 70만원 정도를 받는다. 1년 계약직이지만 정년이 없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근무할 수 있다. 50분 일하고 10분을 쉬는데 중간 중간 몸을 푸는 체조 시간이 있다.

    업무를 마치면 그때부터는 동호회 활동 시작이다. 영화, 사진, 인문학, 탁구 등 19개 동호회가 돌아간다. 외로울 틈이 없다.

    4대 보험은 기본이고 병가를 내면 회사에서 의료비 일부를 지원한다. 모니터를 보는 작업을 하는 만큼 1년에 두 번 지정 안과에서 검진을 받을 수 있다. 환갑, 고희는 물론 손주가 태어날 때마다 축하금을 지급하고 겨울에는 아이젠, 봄에는 황사 마스크를 챙겨준다.

    노인들 사이에 “시니어(노인) 기업의 삼성”이란 소문이 나면서 설립 초기 10대 1 수준이던 입사 경쟁률이 이젠 20대 1에 이른다. 공인회계사, 구축함 함장, 한문 교사, 사진작가, 중소기업 직원, 대기업 간부, 주부 등 왕년에 했던 일도 다양하다. 정은성 대표는 “초고령화를 방치하면 일본처럼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지만 거꾸로 경쟁력 있는 노인 일자리를 발굴하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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