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애주가는 누구?

  • 디지틀조선일보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명욱

    입력 : 2017.10.12 08:00

    풍류가 있었던 한국의 술 문화, 그곳에 있었던 역사적 인물

    한국에는 외국과 다른 독특한 술 관련 인사법이 있다. “술을 좋아하냐”란 질문 외에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해봤을 법한 내용, “주량은 얼마냐 되냐”란 것이다. 외국에도 당연히 주량에 관한 질문은 있긴 하다. 하지만 한국처럼 첫 대면에 직접 물어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렇게 한국에서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은 정말로 주량이 궁금한 것도 있지만, 술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나와의 공통점을 찾아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한국인의 정서 속에서는 술에 대한 다양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추억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 속의 인물들은 술을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즐겼을까? 주량을 물어보는 독특한 인사법을 가진 한국의 문화 속에서 풍류와 문화를 즐겼던 역사적 인물 3인을 소개해 본다.

    송강 정철이 고향인 담양에 내려와 사미인곡 등 작품을 남긴 송강정(출처 문화재청)
    가사 문학의 대가이자 서인의 영수 송강 정철. 그가 남긴 술의 시

    조선 선조 때의 송강 정철은 가사 문학의 대가라고 평가 받는다. 가사 문학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운문과 산문의 중간 형태로 조선 시대를 관통하며 지속해서 전해 내려온 문학의 한 갈래이다. 그가 대가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종래의 한문투를 벗어나 3·4조의 운율에 의해 자유자재로 우리말을 구사했다는 것, 그리고 시풍이 호탕하며 원숙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그의 작품으로는 학창시절 문학 시간에 단골로 등장한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이다. 여기에 정철이 결정적인 애주가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바로 장진주사(將進酒辭).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을 꺾어 술잔 수를 세면서 한없이 먹세 그려”로 시작되는 이 시는 탐미주의적인 관점과 규율에 얽매이지 말자는 노장사상, 그리고 허무주의를 권주가로 표현했다고 해석하곤 한다.

    정철은 여행을 좋아하는 풍류가답게 자연 친화적인 것을 즐겼다. 그의 시 "저녁달은 술잔속에 지고 봄바람은 내 얼굴에 떠오른다"란 대월독작(大月獨酌)을 보면, 보름달을 보며 홀로 술을 마신다는 기록이 나타나 있는데, 현재 그가 남긴 술의 시조만 해도 20여 수 나 되고, 그의 대표작 '관동별곡'이나 '사미인곡도' 의 감성적인 표현을 봤을 때 술과 자연을 함께 즐기며 썼을 것이라고 후대는 평가한다.

    송강 정철
    정철은 문인으로는 후한 평가를 받지만, 정치가로서는 박한 평가를 받는다. 서인의 영수였던 그는 임진왜란 전인 1589년 기축옥사 때 역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1000여 명의 동인 측 인사를 처형, 수백 명을 귀양 보내어 원한을 산다. 술에 대한 절제도 약해 선조가 의주로 몽진했던 임진왜란 때는 중요한 어전에 과음으로 불참, 이후 탄핵을 받는 등, 광해군 이전까지 그 명예가 실추된 상태였다. 이후 복권과 실추를 거듭한 끝에 1694년 숙종 대에 들어서 정식으로 복권된다.
    신라의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은잔. 예로부터 은잔은 궁중에서 많이 쓰였다.(출처 문화재청)
    성종 대 명문장가 손순효. 하사받은 은잔을 넓게 핀 인물

    역사가 기록한 애주가라면 이 사람 또한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조선 성종 때 병조판서까지 역임한 손순효이다. 중국으로 보내는 모든 서신을 그가 담당할 정도로 당대의 빼어난 문장가였고, 이러한 문장실력은 술을 마신 후에도 결코 떨어짐이 없었다. 하지만 워낙 술을 좋아하다 보니 늘 취해있는 듯 했고, 이러한 모습을 성종은 걱정, 그에게 술을 경계하라는 의미로 하루에 딱 3잔만 마시라며 작은 은잔을 하사한다.

    애주가인 손순효는 입장에서는 하루에 3잔밖에 못 마신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질 일이었다.  하지만 왕이 직접 하사한 어명은 절대적으로 따라야만 했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손순효는 이내 지혜를 발휘한다. 잔은 그대로 두되, 잔의 크기를 넓히자는 것이다. 결국 대장장이에게 요청, 작은 은잔을 사발만큼 크게 만들게 된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곧 성종에게 들키게 된다. 잔이 커졌으니 다시 취하는 모습을 어전에서 보인 것이고, 이내 성종은 어명을 어겼다고 크게 노하게 된다. 순간 손순효는 당황했지만 잔은 변함이 없다고, 다시 말해 하사받은 잔과 무게에는 변함이 없음을 증명한다. 손순효의 재치에 마음이 풀어진 성종은 “내 소견이 좁아지거든, 그때 이 사발 잔 만큼 넓게 펴주길 바라오.”란 어진 군주와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참고로 손순효는 늘 청렴하고 훌륭한 인품으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대쪽 같은 성격으로 연산군 대에는 직언도 서슴지 않았는데, 그의 인품으로 연산군이 벌을 내리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같은 애주가라도 절제하지 못한 송강 정철과는 사뭇 다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고전 소설. 국선생전의 일부. 수능에도 자주 출제되는 중요한 소설이다.(출처 두레앙)
    고려 시대 대표 문장가 이규보, 술을 주인공으로 쓴 소설 ‘국선생전’

    고구려를 통해 민족혼을 깨우기 위한 서사시 동명왕 편을 집필하고, 동국이상국집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알린 고려 중기의 문인 이규보는 고려시대 최고 애주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잎에 술을 담아 연대로 빨아 마시고, 현대의 캠핑카와 같은 이동용 정자 사륜정(四輪亭)을 만들어 자연과 술을 함께 느끼고 즐겼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자연친화적인 느낌과 문화적 재능을 아낌없이 그의 시와 소설에 불어 넣었는데, 특히 그가 집필한 소설 중에 수능시험에 단골로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것이 바로 국선생전(麴先生傳)이다. 이 소설은 모든 주인공을 술을 의인화하여 서술했는데, 주인공은 국선생(麴先生)이라 불리는 맑은 술, 조상은 술의 샘인 주천(酒泉) 출신이며, 아버지는 막걸리(醝), 어머니는 곡식이다. 그의 아들 역시 모두 술로, 각각의 이름이 독한 술 ‘혹(酷)’, 진한 술 ‘폭(暴)’, 그리고 쓴 술인 역(醳)이다. 아버지인 국선생(맑은 술)은 총명하고 뜻이 컸으며 향기로운 이름으로 왕의 총애를 얻었지만, 아버지의 권세를 너무 믿은 세 아들은 방자히 행동하다 몰락을 한다. 주인공인 국선생(맑은 술) 역시 서민으로 좌천되지만, 다시 왕의 부름을 받아 공을 세우고, 결국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인간사의 다양한 모습을 술에 빗대어 표현했는데, 결국 맑은 술인 주인공이 공을 세우고 돌아가는 모습과 술에 대해 선생이라고 붙이는 등 술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아들들의 방자했던 모습을 통해 술의 나쁜 점 역시 서술하는 등 균형 잡힌 모습도 보이고 있다. 이규보에 대한 정치가로의 평가는 겸손한 성격의 소유자 또는 당시 무인정권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어용 지식인이었다는 등 갈리는 부분이 있지만, 그가 가진 학식과 문학적 작품, 당대의 지식인으로 그의 업적은 최고로 인정받는 상황이다.

    다양한 역사를 가진 한국의 술 문화, 이제는 원래대로 돌아가야 할 시대

    가끔 한국의 전통주 맛을 음미하거나 그가 가진 문화에 대해 설명하면 늘 와인처럼 설명하고 즐긴다는 말을 듣곤 한다. 맛을 음미하고, 문화를 즐기는 와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맞는 말일 수 있다. 아쉬운 것은 그렇게 말한 당사자가 한국의 술에는 역사와 문화가 깊다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저 외국의 술이 멋진 문화이며, 우리나라 술은 늘 저렴하고 소박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한국의 술 문화는 외국의 그 어떤 술 문화에 뒤지지 않으며,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2000년 전, 해모수와 유화부인과 술을 나누며 주몽이 태어난 고구려 건국신화부터, 수확 시기에 맞춰 햅쌀로 술을 빚고 보름달을 보며 함께 나누며 즐겼다는 신도주(新稻酒), 추운 산속 생활을 이겨내기 위한 사찰의 곡차, 술의 색을 맑게 하려고 동물 중 맑은 피를 가지고 있는 12간지의 돼지날에 빚기 시작했다는 삼해주(三亥酒), 반대로 진한 술을 얻기 위해 말의 날에 빚었다는 삼오주(三午酒), 술맛을 보니 입속에 푸른 파도가 치는 듯하다는 녹파주(綠波酒), 향이 지극히 좋아 마시는 것이 아깝다는 석탄주(惜呑酒) 등의 어원만 보더라도, 삶 속에서 맛을 찾고, 풍류를 즐겼던 우리만의 역사가 얼마나 특별한 지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를 가진 한국의 전통주와 지역 특산주는 주류업계의 마이너 한 존재다. 주류시장의 소비는 소주 맥주가 80% 이상 차지하고 있으며, 젊은 층은 구입하기 편리한 수입 맥주와 크래프트 맥주를 선호한다. 최근에 인터넷 판매 허용을 통해 전통주가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전통주가 구하기도 어렵고 여전히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일 수 있다. 하지만, 찾아보면 전통주만큼 가까운 존재가 없다. 우리에게는 내가 사는 지역이 있고, 고향이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고향이 없게 느껴지더라도 우리 부모님은 고향이 있다. 설사 대도시라도 본래 가지고 있던 지역의 술은 존재한다.

    기회가 된다면, 내가 사는 곳의 지역 술, 또는 부모님 고향의 술을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 알고 보면 수입 맥주나 와인보다 정서적으로 훨씬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다. 어렵게 생각할 것은 하나도 없다. 부모님이나 주변에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늘 자연과 풍류, 그리고 해학이 넘쳤던 한국 술 문화, 일제강점기 시절과 산업화를 통해 그 문화의 본질은 상당히 잃어버렸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가까운 주변부터 그 본질을 찾아본다면, 늘 같은 일상을 사는 지루한 삶 속에서 고리타분하다고 보았던 우리의 전통 술 문화가 참신하게 느껴지는 사고의 확대, 발상의 전환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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