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술로 월급을 줬다고?

  •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명욱

    입력 : 2017.12.07 18:46

    술에서 유래한 다양한 우리말 이야기

    지금이야 술이 무척 흔한 시대지만 불과 100년 전, 산업화 이전의 시대만 봐도 술은 무척 귀한 존재였다. 술을 빚기 위해서는 먹을 곡식 외에 잉여 농산물이 있어야 하며, 보이지 않는 효모균을 잘 키우기 위해 관리라는 인력과 더불어 발효를 하기 위한 저장고라는 장소까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술을 빚는 가양주 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술 빚는 가문은 곡식이 풍성하다는 뜻이며, 인력이 있다는 것이었으며, 장소가 있다는 것은 집이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술 맛 자체가 가문의 위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어졌고, 기분을 위해 즐기는 최고의 사치품 중 하나였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 시대에는 흉년이 들어 먹을 곡식이 적어지면 왕의 특권으로 바로 금주령을 내리게 된다. 실록에만 무려 129번이나 언급되며, 태종 때는 금주령을 어긴 의순고의 별좌 황상이 귀양을 가고, 영조 대에는 병마절도사 윤구연을 영조가 직접 사형을 집행했다는 기록도 나온다(上大怒 親御南門 斬九淵).

    이러한 이유여서일까. 한국의 술은 귀하다는 의미의 ‘약(薬)’이란 단어를 붙여 약주(藥酒)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가까운 일본도 술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이끌 어(御), 일본어로 오(お)를 붙여 오사케(お酒)라 부르고 있다. 이처럼 술이란 매체는 귀하고 중요하다는 배경으로 수많은 언어와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로 한국을 대표한다는 술문화 수작(酬酌)부터, 화폐 대용으로도 쓰인 술의 모습과 용어를 정리해 본다.

    건배(乾杯) 문화가 아닌 ‘수작(酬酌)’ 문화였던 한국, 그것에서 유래한 수작 부리다
    우리가 술을 마시면 늘 건배라는 말을 달고 살지만, 실은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건배란 단어는 한 번도 등장하질 않는다. 대신 등장하는 단어는 바로 ‘수작(酬酌)’.
    갚을 수(酬), 따를 작(酌)이라 하여, 술을 주고받고 나눈다는 뜻이며 술잔을 돌린다는 뜻이다. 그리고 술을 통한 대화를 한다는 의미이다. 한 번에 다 마셔야 하고 잔을 부딪치는 건배와는 다른 문화이다. 오래간만에 친구들끼리 회포를 풀며 탁주 한 잔을 나눌 때, 지나가던 주모에게 잔을 건네면 주모가 어디서 수작을 청하냐는 말이 변하여 수작 부린다는 뜻으로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김홍도의 주막. 막걸리를 항아리에서 뜨고 있다
    참고로 건배 문화는 원래 고대 바이킹족이 시작이라고 해석한다. 당시 쓰던 잔은 대부분 뿔잔, 아래쪽이 뾰족한 형태다 보니 잔을 세울 수 없었고, 늘 다 마셔야 했다. 한마디로 원샷. 마를때까지 다 마시라는 건배(乾杯)란 의미와도 같다. 잔을 부딪치는 풍습은 적들과 화친을 할 때, 술잔을 부딪혀서 잔 속의 술을 서로 섞음으로써 독을 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고, 이러한 것이 대륙을 건너 중국으로 왔으며, 일본이 답습하고, 우리나라까지 전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크게 결정한다는 의미의 ‘작정(酌定)’. 알고 보면 술 따르는 양을 정한다는 뜻
    지금이야 술을 담을 때 속이 훤히 보이는 유리병을 많이 사용하지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호리병, 또는 나무통이었다. 이렇다 보니 병 속에 내용물이 얼마나 있는지 몰랐고, 따라서 얼마큼 따를 수 있는 지도 잘 몰랐던 시대다. 여기서 파생된 단어가 바로 ‘작정’. 따를 작(酌), 정할 정(定). 즉, 상황을 보고 술의 양을 정하고 따른다는 뜻이다. 작정하지 않으면 술잔에 술이 한없이 넘쳐 흘렸고, 보는 이는 이것을 작정이 없다고 하여 무작정(無酌定)이라 불렀다. 결국 술이 워낙 귀했기에 작정이란 말이 결정한다는 뜻으로 이어졌다고 해석된다.

    보이지 않는 술의 양을 헤아린다는 ‘짐작(斟酌)’, 이제는 헤아리다란 뜻으로
    짐작이란 헤아릴 짐(斟), 따를 작(酌)이다. 따르는 양을 생각하고 따른다는 뜻이다. 술잔을 보고 또는 상대방이 얼마나 마실 수 있는가,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를 보고 예상해 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같이 마셨다는 ‘참작(參酌)’, 그래서 상황을 고려한다는 말로
    법정 드라마를 보면, 죄질이 무거운데도 상황을 이해하여 형량을 줄인다는 '정상참작'이란 말을 쓰곤 한다. 여기서 참작이란 참여할 참(參), 그리고 따를 작(酌)이다. 즉 같이 술을 따르던 자리에 있다고 직역된다. 좀 더 풀이하자면, 같은 상황, 나아가 같은 사회에 있기 때문에 책임이 오직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며, 상황을 헤아린다는 뜻으로 이어진다.

    술 마시기 전에 먹었던 음식 ‘주전부리(酒前喙)’. 음(音)과 훈(訓)이 하나 된 단어
    간식이나 가벼운 음식을 자주 먹는다는 의미로 주전부리를 부린다는 말이 있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술을 마시기 전(酒前), 새의 부리 홰(喙)처럼 콕콕 찍어 먹는다는 뜻으로 말 그대로 거한 밥상이 아닌 포크로 찍어 먹는 듯한 의미다. 동시에 새처럼 쉬지 않고 계속 찍어대며 먹는다는 뜻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주전은 음독(音讀)인데 부리는 훈독(訓讀)을 사용했다는 것. 아마도 부리 훼(喙)란 단어를 쓰기보다는 그냥 부리라고 하는 것이 훨씬 와 닿아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일에 대한 보상을 술로 줬다는 뜻의 ‘보수(報酬)’.
    보수란 단어를 잘 보면, 갚을 보(報), 갚을 수(酬)다. 여기서의 수의 부수는 술 유(酉). 술로 갚는다는 뜻이다. 이유는 술로 (지금 말로) 월급을 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동양만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양 역시 중세 시대 농노들에게 일한 대가로 맥주를 지급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본 역시 쌀과 같이 화폐처럼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술 유(酉)가 들어가 있는 말은 술 관련 유래가 있어
    술 유(酉)가 들어간 말은 술 관련 유래가 무척 많다. 대표적으로 의술 의(醫)도 그 중 하나이다. 아플 예(殹)를 받치고 있는 것이 술 유(酉)이고, 이를 통해 치유한다는 뜻. 약이 부족했던 시대에 술이 얼마나 약으로 쓰였는가를 알 수 있다.

    같은 한자권인 중국과 일본은 많이 쓰지 않는 단어
    모두가 한자에서 유래한 것이긴 하지만, 수작, 짐작, 작정 등의 단어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 단어로 한국에서의 사용빈도가 가장 높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가장 술을 사랑한다는 말은 어폐가 있지만, 그만큼 삶 속에서 술과 관련한 다양한 문화가 있었다는 반증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한국의 술 문화는 취하는 것 중심의 획일화된 모습, 어쩌면 그 해답을 멀리 있는 와인이나 위스키 등에서 찾는 것이 아닌 해학과 풍류가 있던 우리 전통주에서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명욱 전통주 갤러리 부관장, 주류문화칼럼니스트
    명욱 전통주 갤러리 부관장, 주류문화칼럼니스트
    일본에서 공부한 특이한 전통주 전문가. 10년전 막걸리 400종류를 마셔보고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서 포탈사이트에 제공했다. 현재 가수 김창완 씨와 SBS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 전통주 코너를 진행하고 있으며, 팟캐스트 말술남녀에도 출연하고 있다. 명욱의 동네술 이야기(blog.naver.com/vegan_life) 블로그도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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