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 로제, 장미 음악과 와인

  • 기고자=양승찬 리슬링컴퍼니 대표

    입력 : 2018.05.03 12:54

    [양승찬의 와인 먹고 '音音'] - (8) 길들이고 익숙해짐이 주는 매력


    장미, 우리에게 익숙한 꽃이다.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주거나 받아보고 싶을 장미 백 송이부터 시작해 1997년 심수봉이 번안한 노래 백만 송이 장미, 아득한 순정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까지. 외국어 발음도 익숙해 가끔씩 로즈(Rose)로 등장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웹툰 ‘창백한 말’에 나오는 주인공 로즈가 장미의 가시처럼 밉상이면서도 또 치명적인 매력이 있었다.

    며칠 전 프랑스 꽃집에서 본 장미 © 양승찬
    며칠 전 프랑스 꽃집에서 본 장미 © 양승찬

    장미가 인류와 친숙했음은 역사가 말해준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장미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고대 문명의 벽화에서 장미가 나오며, 심지어 약 3천 5백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장미 화석도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개발된 종만 해도 2만 5천 개가 넘고 매년 새로운 장미가 개발되어 선보인다고 하니 우리의 삶에 은연듯 장미가 함께 해온 듯싶다.

    하지만 장미의 범위는 더욱더 넓어서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매력적인 장미가 많다. 그중 와인과 음악을 소개해보자면 로제(Rosé) 와인과 재즈 베이시스트 김영후의 곡 ‘No rose without a thorn’.



    [EBS SPACE 공감] 미방송 영상 김영후 - No rose without a thorn. bass 김영후, drums 서수진, piano 전영세

    ‘No rose without a thorn’는 예쁜 곡을 쓰고 싶었는데 완성된 곡을 보니 아름답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은 우리의 인생을 엿볼 수 있는 듯해 ‘가시 없는 장미는 없다’는 뜻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영상을 보면 피아노의 독백으로 시작해 베이스와 드럼이 들어오면서 곡을 이끌어가다, 베이스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며 그 흐름을 피아노와 주고받는다. 드럼은 둘의 대화를 들으며 간간이 자신의 의견을 더한다. 저는 이렇게 느꼈어요, 라고 조금 더 형용하고 싶지만 각자가 받아들일 첫 느낌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음악 특히 재즈를 듣다 보면 와인이 땡길 때가 있다. 로즈를 표현한 음악이니 로제 와인을 맞춰보면 어떨까. 빨간 장미, 노란 장미, 백장미, 흑장미처럼 로제 와인에도 다양한 모습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 4개의 와인을 준비했다. 기본적인 로제부터 어쩌면 듣도 보도 못했을 독특한 로제까지.

    참고로 로제 와인이란 적포도 껍질에서 색을 조금만 침출한 것으로서 보통 연한 분홍색을 띤다. 와인의 색에서부터도 그렇지만 약한 레드와인이라 생각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 와인 상식 한 가지 덧붙이면 적포도의 껍질을 제거하여 색을 침출하지 않고 화이트와인처럼 만들기도 한다.

    1. Hager Matthias, Zweigelt Rosé, 2016
    첫 번째 로제 와인은 오스트리아의 하거 마티아즈(Hager Matthias)가 쯔바이겔트(Zweigelt) 품종으로 만들었다. 쯔바이겔트는 오스트리아의 토착 품종이다. 수입사 네이처와인.
    장미와 함께 한 하거 마티아즈 쯔바이겔트 로제 © 양승찬
    장미와 함께 한 하거 마티아즈 쯔바이겔트 로제 © 양승찬

    향을 맡아보면 빨간색 사과인데 껍질을 까고 과육이다. 옅은 장미색과 더불어 상큼하다. 어, 그런데 맛을 보면 사과는 아니다. 생각보다 산도를 가지고 있고 새콤한 딸기나 약한 석류의 맛을 연상시킨다. 알코올은 12도인데 와인은 꽤 가볍다. 알코올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면 물같이 느낄지도 모르겠다. 맨입에 맛있는 물같이 벌컥벌컥 먹고 있다 보면 어느새 취기가 돌아있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가벼운 와인이라 강한 음식과는 맞추기 어렵다. 가장 찾아보기 쉬운 로제 와인의 형태이다.

    2. Dominio del Aguila, Pícaro del Águila Clarete, 2013
    두 번째 와인은 스페인의 도미니오 델 아귈라(Dominio del Aguila)가 뗌쁘라니요(Tempranillo) 품종을 주로 하고 화이트 와인 품종 알비요(Albillo) 외에 여러 품종을 소량 사용하여 만들었다. 스페인 일부 지역에서는 레드/화이트 와인 품종을 섞어 양조해 역시 레드 와인보다는 옅은 색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이 와인은 클라레(Clarete)라고 부른다. 수입사 배리와인.

    장미와 함께 한 피카로 클라레 © 양승찬
    장미와 함께 한 피카로 클라레 © 양승찬

    첫 번째 와인이 물처럼 가볍다면 이건 어떤 채워짐이 느껴진다. 그리고 진한 장미가 생각난다. 흑장미. 신맛이 도드라지는데 가볍지도 날카롭지도 않다. 묵직한 신맛, 많이 익은 사과. 알코올은 13도, 겨우 1도 차이지만 이 와인은 벌컥벌컥이 아니다. 음식과 맞춰야 한다. 어떤 종류든 파스타는 딱 맞을 것 같고 조금 더 무거운 음식과도 맞출 수 있다. 앞의 와인이 약한 석류라면 이 와인은 약한 오미자다.

    3. Vignerons de Buxy, Crémant de Bourgogne Buissonnier Brut Rosé
    세 번째 와인은 스파클링 와인이다. 품종은 피노 누아르(Pinot Noir) 80%, 가메이(Gamay) 20%. 이 와인은 크레망 드 부르고뉴(Crémant de Bourgogne)라고 부르는데, 뷕시(Buxy)라는 와인 생산자 조합이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에서 특정 생산 규정을 따라 만들었다. 크레망을 프랑스의 특정 지역에서 만드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크레망은 유럽 규정으로 프랑스 외의 국가에서도 나온다. 수입사 나루글로벌.

    장미와 함께 한 뷕시 크레망 드 부르고뉴 로제 © 양승찬
    장미와 함께 한 뷕시 크레망 드 부르고뉴 로제 © 양승찬

    향을 맡으면 아오리사과가 연상되지만, 맛을 보면 상큼한 과실보다는 살짝의 누룩향, 쌉싸름함, 기포의 느낌, 시트러스(Citrus) 계열 중 라임 혹은 그보다 더한 레몬에 가까울 정도로 느껴지는 높은 산도. 식전주로 써도 좋지만 코스 요리에서 조금 더 메인 음식에 맞춰도 괜찮고, 개인적으로는 삼겹살에 먹으면 딱 좋겠다. 맛 자체는 그리 강하지 않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이런 와인이 입안을 싹 정리해준다. 재미난 시도를 하면 샤베트와도 잘 어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4. Lini Classico Rosé 2003
    네 번째 와인은 3번째 와인에서 사용한 품종인 피노 누아르 100%인데, 2003년이라 꽤 숙성됐다. 클라시코(Classico)는 스파클링 와인 생산에서 전통적인 방법을 썼다는 뜻으로 한번 발효된 와인을 병에 넣고 효모와 당분을 첨가함으로써 병 안에서 2차 발효와 더불어 기포가 생긴다. 앞서 말한 크레망도 이런 병 내 2차 발효를 거친다. 수입사 레페리레.

    장미와 함께 한 리니 클라시코 로제 2003 © 양승찬
    장미와 함께 한 리니 클라시코 로제 2003 © 양승찬
    숙성된 쉐리와인을 연상시킬 향, 이걸 다르게 뭐라 표현해야 할까. 산화된 느낌, 그리고 효모 숙성이 오래되어 나오는 그 어떤 나무껍질, 혹은 설탕을 불로 지지면 갈색이 되는 때의 느낌, 그런데 생각보다 단맛도 같이 있다. 어렸을 때 동네 놀이터에서 뽑기 먹었던 것처럼. 사실 이쯤 되면 효모 숙성의 특징 때문에 로제와인이라기보다는 숙성된 모습이 드러나는 와인으로 봐도 좋지 않을까. 이런 와인은 기포가 마구 솟아오르지도 않지만 아예 기포가 빠져도 또 그 매력이 있다. 음식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하고 단둘이 먹으면 딱 좋을 것 같다.
    장미와 로제 와인은 옷장을 열었을 때 장식용으로도 좋다. © 양승찬
    장미와 로제 와인은 옷장을 열었을 때 장식용으로도 좋다. © 양승찬

    로제 와인 하면 흔히 프로방스를 포함한 프랑스 남부 지역을 이야기하지만 일부러 그 외의 지역과 품종을 선정하였다. 오스트리아의 쯔바이겔트, 스페인의 클라레, 프랑스의 부르고뉴,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 사실은 우리가 한국에 있으면서 잘 모르는 거지 현지에서는 유명한 것들이다. 한국 재즈도 그렇다. 들어보면 음악 장르에서 또 하나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듯한데 대중적으로는 덜 알려진 느낌이다. 또한 재즈 구성에서 베이스가 리더인 경우도 흔하지는 않다. 보컬, 피아노, 기타가 이끄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하지만 이것저것 다 제쳐놓고 그냥 음악과 와인으로서 바라보면 장미 같은 매력이 있다. 처음에는 장미의 가시처럼 쉽게 다가가기 어렵지만 조금씩 접하다 보면 그 매력을 내게 내어준다. ‘네 장미를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네가 장미를 위해 쏟은 시간이야’. 길들이고 익숙해짐이 주는 매력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장미를 좋아하는 이유는 인류가 장미를 오랫동안 곁에 두어서일지도 모른다. 로제 와인도 한국 재즈도 당장은 생소할 수 있어도 손을 내밀어보면 어떨까. 당신에게도 소중한 장미가 생길지 모른다. 어린왕자의 그것처럼.

    /양승찬 리슬링컴퍼니 대표 ( www.rieslingcompany.com )
    덕후. 옷장에 옷 대신 와인을 넣어둔 불효자. 내쫓겠다는 엄마님의 으름장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다. 특히 리슬링 덕후. 매달 미수입 모젤 와인 시음회를 주최하는 모젤바인 링(Moselwein Ring)을 운영하고 있고 시음, 교육, 홍보 등 리슬링 관련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어 아돌프 슈미트 모젤와인협회 명예회장에게 미스터 리슬링이란 호칭을 듣기도 했다. 결국 리슬링 컴퍼니라는 회사를 만들어 리슬링 폰트 등 F&B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 와인 먹고 '音音'은, '고추 먹고 맴맴'처럼 와인 먹고 음악 듣는 행위다. 한글로 읽으면 '음음', 음료와 음악 혹은 음악과 음료의 조합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커피, 한국술, 월드뮤직, 인디밴드, 등등 어떤 제한을 두지는 않지만 주로 와인과 재즈를 다룰 듯 하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chosun.com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독일, 와인, 재즈 기고자=양승찬 리슬링컴퍼니 대표
    보랏빛 음악, 보랏빛 와인 기고자=양승찬 리슬링컴퍼니 대표
    벚꽃엔딩, 벚꽃와인 기고자=양승찬 리슬링컴퍼니 대표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