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해협의 소주, 친구(ちんぐ)를 찾아

  •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명욱

    입력 : 2018.05.08 13:47

    제2부. 우리는 무엇을 담을 것인가

    대마도와 이키섬에 남겨진 한국말

    한반도와 일본 규슈 사이에 있는 대한 해협에는 두 개의 큰 섬이 있다. 대마도(対馬)와 이키섬(壱岐). 한반도와 제일 가까운 일본 섬인만큼 이 섬들에는 많은 한국어가 남겨져 있다.

    대표적으로 ‘양반(やんばん)’이란 단어는 ‘부자’를 뜻하며, ‘팟지(ぱっち)’란 말은 ‘바지’로 쓰인다. ‘토망갓다(トーマンガッタ)’란 말도 한때 ‘도망갔다’로 쓰이기도 했다. 그 중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가 바로 ‘친구(ちんぐ)’. 우리나라 말인 친구란 단어를 지금도 대마도나 그 옆에 위치한 이키(壱岐) 섬에서는 똑같이 쓰고 있는 것이다.
    이키섬의 명물 원숭이암석
    보리소주의 발상지, 이키섬에서 태어난  ‘친구(ちんぐ) 소주’

    흥미로운 것이 이 친구(ちんぐ)란 이름으로 소주를 만드는 곳이 있다. 대마도와 50km 정도 떨어진 이키섬의 오모야주조(重家酒造)다. 직원 10명 내외의 소규모 양조장이지만 100년의 역사라는 내공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이키섬이 기원인 보리소주를 만들고 있는데, 대표적인 제품명이 바로 ‘친구(ちんぐ)’이다. 쌀 1/3과 보리 2/3을 배합하여 발효를 시키고, 이렇게 발효된 발효주를 증류기에 넣어 1년, 3년, 10년 숙성으로 만들고 있다. 쌀을 1/3을 넣는 것은 이곳 이키섬 보리소주의 특징이다. 일본 본토 내의 보리소주는 쌀을 사용하지 않고, 100% 보리로 만드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키섬 오모야주조. 작은 규모다
    오모야 주조장이 친구(ちんぐ)라는 소주를 만든 것은 16년 전인 2002년이다.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자신들이 거주하는 이키섬이 고대시대에 한반도와 자국과 교류의 장이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실제로 대마도는 워낙 척박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전에는 그다지 관심도 없던 섬이었다. 하지만 이키섬은 농업이 발달한 풍요로운 곳이라서 그전에는 막부(幕府)에서 관리가 들어갔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일본 문화가 시작하는 곳은 대마도가 아니라, 바로 이키섬이다.
    발효된 상태의 보리술. 증류를 기다리고 있다


    보리술을 떠봤다. 살짝 쌀과 보리가 섞여있다. 맛은 굉장히 새콤한 맛이 강했다. 더운 지역이라서 맛이 금방 새콤해진다. 그래서 발효주보다는 증류주가 발달했다. 증류한 이후에는 미생물이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압과 상압, 모두 쓰는 증류 기법

    친구(ちんぐ) 소주는 50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증류가 되는 감압 방식과 78도에서 증류가 되는 상압 방식을 모두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상압 방식은 높은 열에 증류가 되는 만큼 자극적인 향미가 있어 긴 숙성을 필요로 한다. 균은 대체로 우리 막걸리에 자주 들어가는 백국균을 쓰지만, 오키나와 아와모리 소주가 쓰는 흑국균도 차별화된 제품으로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백국균으로 빚으면 맛이 막걸리처럼 신맛이 많이 올라오며, 흑국균으로 빚으면 진한 맛이 살아있다.

    쌀과 보리를 섞어서 만드는 이유를 대표인 요코타 씨에게 물어봤다. 대답은 쌀의 단맛이 향으로 잘 남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맛이 부드러워지고, 그 부드러운 맛이 이키의 보리소주의 특징이라고 전했다.

    중요한 친구(ちんぐ)소주의 맛은?

    직접 마셔보니, 정말로 단향이 올라오는지는 잘 느끼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20도가 넘어가면 입 속에서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보리의 구수한 맛과 쌀이 주는 담백함은 분명히 있었다. 원료의 풍미가 그대로 잘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키섬에서는 소고기와 이 보리소주를 즐기는 문화가 있다. 특히 일본 소 특유의 기름진 마블링을 보리소주가 깨끗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키섬의 소주 친구. 초록색병은 숙성기간이 2년. 상압증류한 것과 장기숙성주 등 브랜딩했다
    판이하게 달랐던 대마도와 이키섬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을 취재한다고 했지만, 여정 자체는 품이 많이 들었다. 우선은 대마도로 가기 위해 KTX로 서울에서 부산역, 도보로 부산항에 도착 고속선을 타고 대마도 히타카츠항(比田勝港)에 도착했다.

    차로 2시간을 달려 대마도의 유일한 양조장인 가와치주조장(河内酒造)을 방문했다. 1부에서도 언급한 데로 그곳은 척박한 땅으로 쌀이 부족했던 대마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며, 술 발효에 필요한 쌀은 대마도가 아닌 일본 본토에서 가져오고 있었다. 다만, 대마도에서 생산되는 고구마와 메밀로 소주를 빚고 있었다. 역사가 100년이 넘은 만큼 술 자체의 맛은 충분히 준수했다.

    대마도가 척박한 땅이란 것을 가장 극심하게 보여준 것은 점심 식사였다. 그저 허기를 때우는 수준밖에 되지 못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음식문화가 발달한 일본의 모습은 극도로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대마도는 한일간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급자족이 안되니 양국가간의 중간자적 역할을 하며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 때는 우리나라에 선봉대를 보냈고, 조선통신사를 보낼 때는 500명의 인솔자를 파견, 일본 본토를 안내했다.

    다음날 새벽 6시에는 대마도 이즈하라항(厳原港)을 출발, 고속선을 타고 1시간을 달려 이번 취재의 목적지인 이키섬에 도착했다. 넓은 평야가 있는 이키섬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농업과 항해 기술을 전래하고, 정착해 살았다고 인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넓은 평야를 통해 술과 음식문화가 발달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소고기와 이번 취재를 진행한 일본 보리소주이다. 그리고 그 보리소주의 시작은 1부에서 이야기한 대로 대마도로 경유해서 이키섬에 종착한 조선의 소주다.

    이키국 박물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이 본토 사람에게 농업과 항해술을 알려주고 있다. 파란색 옷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담을 것인가

    일본 보리소주의 기원이 한반도라고 하지만, 정작 그 기술을 전래해줬다는 우리는 여전히 획일적인 소주를 마시고 있다. 쌀, 보리, 고구마 등의 농산물의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제품도 아니며, 상압, 감압 등의 증류 기술의 차이도 느끼지 못한다.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하는 제품명도 지극히 보기 힘들다.

    600년 전, 세조가 대마도주에게 보낸 조선의 소주,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 소주에 이제는 무엇을 담을지 고민해야 할 시기가 왔다. 소주를 지금처럼 획일적으로 놔두기에는 그 역사적 가치가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한일간의 가교적 의미가 있는 친구(ちんぐ)라는 단어, 그리고 이 단어로 술을 빚고 있는 오모야주조(重家酒造).  우리는 소주 문화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 주는 방문이었다.

    ☞ 제 1부는 대마도로 보낸 소주는 어디로 갔나?
    명욱 전통주 갤러리 부관장, 주류문화칼럼니스트
    명욱 전통주 갤러리 부관장, 주류문화칼럼니스트
    일본 릿쿄(立教)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10년전 막걸리 400종류를 마셔보고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서 포탈사이트에 제공했다. 가수겸 배우 김창완 씨와 SBS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 전통주 코너를 2년 이상 진행했으며, 본격 술 팟캐스트 '말술남녀'에도 출연하고 있다. 명욱의 동네술 이야기(blog.naver.com/vegan_life) 블로그도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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